“복종 강요하는 유교적 교육문화, 학생들 피해 키웠다”
입력 2014-05-27 04:03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이 본 세월호 참사 원인·문제점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기 소르망(Guy Sorman·70) 교수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여러 요인들 가운데 학교 선생님의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복종을 강요당했던 문제점도 일부 있었다”고 말했다. 창의성 대신 수동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교육방식 때문에 학생들이 선실 안에 머물게 돼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소르망 교수는 2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소에서 ‘시민의 안전과 국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위계를 강조하는 유교적인 교육방식과 공무원 사회 분위기, 압축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항만산업 등을 거론하며 사회안전망의 문제점을 주로 한국사회의 전근대적인 측면에서 찾았다. 소르망 교수는 먼저 국가에 지나치게 많은 책임이 부여돼 있는 점을 시스템의 맹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강연 부탁을 받자마자 ‘한국에서 국가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떠올렸다며 “중앙집권화한 국가가 너무 많은 책임을 떠맡게 되면 관리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앙에 권력이 집중돼 있다 보니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의 역량은 대형 참사에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이 돼 버렸다고 했다. 소르망 교수는 자신이 청와대를 방문해 한국 정부에 충고를 건넸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사소한 것까지 청와대가 챙길 수 없다. 국가가 탈(脫)중심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국민들의 정신문화와 관련된 유교식 교육문화도 원인으로 들었다. 소르망 교수는 “유교적 전통이라는 것이 계층화된 의사결정을 유발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며 “복종을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 교육이 선생님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학생들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선실 안에 머물렀다가 희생당한 학생들이 많았던 점을 지적하면서 “학생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때 갑판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복종 때문에 선실에 남아 있다가 비극이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 각 부처에도 상명하달 방식의 문화가 남아 있다”고 비판했다.
소르망 교수는 “인천국제공항은 세계 일류 공항으로 찬사를 받는 반면 항만교통은 제3세계 수준”이라며 “근대화에서 밀려난 부분은 매우 저발전 상태”라고 꼬집었다. 세월호 참사로 도마에 올랐던 규제에 대해서는 “부패는 규제가 분명하지 않을 때 틈새를 파고들기 때문에 제도의 허점을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르망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한국이라는 국가의 현재 수준을 살펴보는 계기”라며 “한국에서 행정체계의 근대화는 경제적 근대화 수준에 아직 못 미친다”고 진단했다.
친(親)시장주의 성향 학자답게 해법은 시장과 시민사회 등 민간 부문에서 찾았다. 소르망 교수는 “대한항공의 경우 1990년대 아메리칸항공과 비교해 17배나 많은 항공 관련 사고를 일으켰지만, 외국 안전 전문가들을 기용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가 됐다”며 안전 관련 부분에서 외국에 문호를 개방할 필요성을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수배 중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일가가 프랑스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질문에는 “프랑스 대사에게 물었는데 유 전 회장의 흔적이 프랑스에 없다고 했다”고 답했다. 이어 “프랑스에도 탈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종교단체가 있다”며 “프랑스 정부는 정당성 있는 교회와 이단, 사리사욕을 위해 만들어진 종교단체 등을 법적으로 구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