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생생한 필체… 원본 추정 편지 발견
입력 2014-05-27 02:33
“(전략) 이 사람은 졸렬한 재주로 난국을 당하고 왜적의 우두머리가 재차 움직여 어지러운 세상이 된 가운데서 ‘근심 우(憂)’ 한 글자만 생각났습니다. 다행히 별장(別將) 최균과 최강의 힘을 입어 웅천(경남 진해)의 적을 크게 이기고 또 바다에 떠 있는 적장을 사로잡으니 마음이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밤낮으로 기원하는 것은 우리 임금의 수레를 서울에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군무가 어지럽고 심히 바빠 이만 줄입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이 선비 강응황(姜應璜)에게 보낸 편지(사진)다. 당시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영 수군은 경상남도 연안에서 왜군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한산도대첩 등 기념비적인 전투를 치른 이순신은 같은 해 9월 부산 앞바다에서 왜군 수군 전단을 기습해 100여척을 격파했다. 이런 와중에 용만(평안북도 의주)에 있는 강응황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반가운 마음에 보낸 글로 보인다. 강응황은 그해 4월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운 인물이다.
이 편지의 원본(사진)이 확실시되는 글이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 소장에 의해 발굴, 공개됐다. 그동안 편지의 내용은 1982년 향토사학자 조현식씨가 펴낸 ‘고성향토수호사’ 속 영인본(복제본)으로만 알려졌다.
노 소장은 26일 “편지 속에 등장하는 의병장 최균의 후손으로부터 편지의 원본을 입수했다”며 “강응황이 당시 의주에 있었다는 묘지 글과 편지 내용이 일치하고 소장처가 분명한 점 등으로 미뤄 원본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순신의 친필로 주장되는 편지 가운데 원본으로 인정된 것은 ‘병마절도사 신할에게 보낸 편지’(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 등 두 점뿐이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