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환경서 복음화 꽃 피운 삼척 큰빛교회 김성태 목사 이야기

입력 2014-05-27 03:26


섬김·봉사에 마음 연 주민들… 성도 2명이 1300명으로

복음의 불모지에서 교인 2명으로 시작해 개척 13년 만에 1300명으로 성장했다. 개척 5년 만에 새 교회당을 건축하자며 모아놓은 헌금을 필리핀 선교를 위해 드렸다. 입시가 중요하지만 자녀가 고학년이 될수록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독려하는 부모들이 많은 교회다.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지역사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소문을 듣고 불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강원도 삼척시의 랜드마크가 된 큰빛교회 이야기다.

지난 23일 오후 삼척 교동로 교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성태(46) 목사는 오전 내내 심방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심방하고 전도하는 게 시골교회 목사의 가장 큰 일”이라며 웃었다.

협성대(신학과)와 감신대 선교대학원을 졸업한 김 목사는 1995년 강원도 최남단 삼척 용화교회에서 28세 때 첫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최고 무기를 젊음이라 생각하고 복음전도에 매진했다. 많이 자 봐야 하루에 5시간. 그는 말 그대로 눈만 뜨면 전도했다.

“새벽예배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밭에서 일하는 어르신이 보이면 즉시 달려가 일손을 도왔어요. 마을 어귀인 가게 주변에 어른들이 모여 있으면 음료수를 대접하며 같이 얘기를 나눴고요. 그렇게 관계를 맺어 갔고 지적장애인 한 사람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목격하면서 4명이었던 교인이 6년 만에 100명을 넘겼습니다.”

2001년 1월, 김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와 목적하심에 순종해 삼척시 교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교회가 위치한 곳은 삼척시의 초입. 그루터기가 된 교인은 2명. 김 목사는 다시 전도하면서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 교회를 일궜다. 그 열매는 척박한 삼척의 복음화율을 6%까지 끌어올리는데 기여 했다. 그는 “하나님의 목적에 순종했더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목사는 전도자다

김 목사는 무엇보다 전도에 열심이다. 아무리 바빠도 교인 심방과 전도를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을 떼어 놓는다. 7만5000명이 살고 있는 삼척시의 식당이나 미용실, 부동산 사무실 등 주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다. 시내에 있는 식당 주인들은 김 목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웬만한 택시 기사도 큰빛교회를 다 안다.

“식당 주인을 전도하려면 식당에 가야죠. 꾸준히 갑니다. 5년이고 6년이고 계속 갑니다. 저 혼자만 가는 게 아니라 손님도 데리고 갑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주인들이 제가 목사인 걸 알게 되고 인사도 나누면서 인생 문제도 얘기하게 되죠.”

김 목사는 교회를 개척한 이후 3년 동안 매년 성탄절이면 직접 산타로 변장하고 어린이들을 찾아가기도 했다. 척박한 삼척에 성탄문화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어린이집을 비롯해 학원이나 시장 등을 다녔다. 시내 어린이집은 안 가본 곳이 없었고 교회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선물에 성경구절을 써서 나눴다. 큰빛교회는 영아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음세대가 450여명에 이른다. 차세대가 교회의 자부심으로 떠오른 데는 김 목사의 이 같은 노력이 일조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김 목사가 만나는 사람들의 영역도 넓어졌다. 요즘엔 공직자나 사업체 대표, 교수, 예술가 등과도 만난다. 김 목사는 그때마다 예수 없는 사람들의 영혼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돈이 있든 없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으면 좋겠다”면서 “지위가 높고 낮든 예수 없이 죽으면 지옥 가는데 너무 불쌍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큰빛교회는 교회당 문을 24시간 개방한다. 지치고 곤고한 사람들이 혼자 교회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영적 갈급함을 느끼기에 교회는 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평소에 웃는 낯으로 좋은 인상을 주면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이 생길 때 교회를 찾아오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개척하던 때나 지금이나 절대로 교회 문을 잠가두지 않습니다. 도난 등의 이유로 엄격하게 관리하는 곳도 있지만 저와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는 영혼을 위로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서 교회 문을 닫지 않습니다. 설사 은촛대를 훔쳐간 장발장이 있을지라도 그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목사는 준비된 사람이다

그가 사람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려고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목회 초기 시절 겪었던 실수 때문이다. 용화교회에서 일할 때 아흔이 넘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아저씨 한 분이 있었다. 아저씨는 부인과는 사별하고 노모를 모시며 외로움을 이기려고 술로 보내는 날이 많았다. 김 목사는 교회 한번 나오라며 자주 권했지만 그때마다 ‘지은 죄가 많아 안 된다. 그냥 놔두라’며 손사래만 쳤던 아저씨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아저씨가 교회를 찾았다. 무를 잔뜩 들고서였다. 당연히 차 한 잔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김 목사 부부는 그날따라 급히 외출할 일이 있었다. 시골이라 버스 시간을 놓치면 안 돼 할 수 없이 급히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3일 후 교회에 돌아온 김 목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했다. 아저씨가 술에 취한 채 쓰러져 거리에서 자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사망한 날도 교회에 무를 들고 찾아왔던 그날이었다.

“그 일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엄청 회개했습니다. 더 열심히 섬기라는 신호로 여기고 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항상 준비된 목회자가 되자, 아무리 바빠도 사람을 만나자. 초심을 잃지 말자는 게 목표가 됐습니다.”

이렇게 말하던 김 목사는 양복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접었던 종이를 펼치니 글씨가 빽빽했다. 하루의 스케줄 표라고 했다. 다이어리나 스마트폰이 아니라 교회 사무실에서 쓰던 이면지 위에 시간별로 할 일을 적어 놓았다. 계획된 일을 완료했을 경우는 줄을 그었고 중요한 것은 동그라미, 미비한 것은 별표시를 해 뒀다.

김 목사의 ‘이면지 스케줄표’에는 심방 대상자 이름도 적혀 있다. 주로 교회에 새로 나온 신자들이다. 교구별 심방은 담당 부목사들에게 맡기는 편이지만 새 가족 심방은 담임목사가 직접 챙긴다. 교회의 신자가 된 그들의 형편이나 분위기를 파악하고 교회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목사는 개척자다

큰빛교회 비전은 ‘선교하며 일꾼을 기르는 교회’이다. 많은 교회 속의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는 교회를 지향한다. 그러면서 목사와 성도가 서로 꿈을 공유한다. 김 목사는 이를 ‘거룩한 상상’이라고 표현했다. 휑한 교회당이 아니라 성도들이 가득한 예배당. 부흥과 성장, 은혜가 넘치는 교회. 삼척의 58개 교회들이 주민들에게 칭찬받는 그날을 상상했다.

김 목사는 “거룩한 상상 때문에 불신자들이 추천하는 교회까지 됐다”며 “목사와 성도 모두가 믿음으로 꿈을 꿨다”고 말했다. 그는 “매번 믿음대로 기도하고 상상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했다”며 “지금의 부흥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결과”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순종에 순종을 거듭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김 목사는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순종할 때 발견하게 된다”며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숱한 과정을 주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일은 뚝딱 되는 일은 없다. 반드시 과정이 존재한다. 김 목사는 “하나님에게 절대 낙하산은 없다”며 “목회자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통찰력과 영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자신의 20년 목회 경험을 담은 ‘불신자들도 찾아오는 교회’(나침반사 근간 예정)를 출간한다. 하나님의 목적과 공동체의 상상, 순종이라는 키워드로 20년 목회를 정리했다.

김 목사는 도전의식이 약한 요즘의 신학생들을 향해서도 권면했다. “이 험난한 시대에 목회를 한다는 것은 불속에 들어가는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속에 뛰어들 하나님의 사람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개척자를 찾으십니다. 순종하며 나가십시오.”

삼척=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