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노트] (20) 스카프, 지혜로운 천 조각

입력 2014-05-27 02:39


예닐곱 살 무렵, 엄마의 실크 스카프는 어깨를 타고 흐르는 긴 머리를 대체하는 신기한 장난감이었다. 스카프를 이마 둘레로 묶어 뒤통수에서 묶은 다음 직사각형으로 내려오는 천 자락을 면사포처럼 뒤로 젖히면 긴 머리의 여인이 된 듯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외출 시 목에 꼭 두르는 장식품이었고 파리 유학 시절에는 가방의 손잡이 위에서 봄바람을 기분 좋게 가르는 감각 도우미였다.

스카프의 쓰임새는 생각을 초월한다. 묶은 머리의 고무줄을 감싸는 덮개 역할뿐 아니라 밀짚모자를 남다르게 꾸며준다. 또한 흰 셔츠에 얹혀 상반신을 밝게 물들이는 ‘조명’으로 분하는 재주도 있다. 스르르 흐르는 스카프 자락은 하얀 셔츠를 돋보이게 한다. 이처럼 지혜롭기에 여행갈 때 꼭 챙기게 된다. 가죽벨트 대신 스카프를 허리에 두르면 벨트보다 가벼우며 그만큼 조이지 않아서 편하다.

스카프의 요긴함은 깊게 파인 옷을 입을 때 빛을 발한다. 시폰 블라우스나 구멍이 송송 뚫린 그물코 스웨터를 속살이 비친다고 꺼릴 필요 없다. 스카프로 가슴을 덮어 뷔스티에처럼 활용하면 보기에도 감각적이고 노출 문제가 해결되니 일석이조 효과를 얻는다. 어처구니는 없으나 머리 감을 여력이 없는 경우 스카프 한 장은 의외의 방패가 된다.

스카프는 가을 전용 아이템이 아니다. 한여름의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불러일으키는 여름감기를 예방하는 데 스카프는 보탬이 된다. 목에 감기는 한 뼘의 천은 멋들어진 보호자나 다름없다.

김은정(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