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추첨제 민주주의
입력 2014-05-27 02:39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사람 됨됨이를 모르는 후보들 가운데 누구를 찍어야 할지, 아예 찍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인 유권자들이 많을 것이다. 광역단체장이나 교육감 후보의 경우 대체로 인지도가 높고, 공적 활동의 공과가 드러나 있어 판단의 준거가 있는 편이지만 여타 후보들은 대부분 유권자들이 선호 정당에 따라 표를 주게 된다.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후보에게 표를 준다는 게 영 찜찜하다.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들을 이렇게 뽑고 나면 부정·비리를 저지르고, 혈세를 낭비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주민들은 투표권을 행사했건만 정치는 우리 마음대로 안 된다는 무력감에 휩싸인다.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와 그 수단인 선거제도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은 차선책이다. 선거제는 낮은 투표율로 잦은 ‘역선택’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과 소수 엘리트 집단의 권력 독점을 낳는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대의제 민주주의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민 발의, 추첨제 민주주의, 시민 불복종 등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보완할 것을 주장한다. 고대 아테네가 직접민주주의라고 불린 것은 대부분 공직을 추첨으로 선정함으로써 평민 누구나 대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복잡한 추첨제를 통해 폴리스 각지에서 선발된 500인의 평의회는 관리를 뽑고, 그 성과를 평가하기도 하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중추였다.
많은 사람들은 추첨을 통해 대표를 뽑으면 무능력자, 범죄자나 정신병력자가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모자라는 점이 많은 사람이 선출됐을 때 나머지 주민들은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할 것이다. 이지문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우선 지방의회와 각 정당의 비례대표부터 추첨제로 뽑아보자고 2012년 제안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추첨을 통해 뽑은 배심원들이 국민참여재판에 임하고 있지만 배심원들의 결정은 판사들과 90% 일치했고, 항소심 파기율도 일반 재판보다 더 낮았다. 요컨대 많은 영역에서 전문가적 능력보다 상식이 쟁점 판단에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녹색당은 지난해 3월 전국대의원대회에서 100% 추첨을 통해 140명의 대의원을 선출했다. 그리고 대의원들의 토론과 투표 결과 이번 지방선거에 지역구 후보는 11곳,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는 14곳에서 내기로 했다고 녹색당은 밝혔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