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일수] 우리에게 소중한 두 가지

입력 2014-05-27 02:38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생명가치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 회복해야”

세월호 참사가 몰고 온 충격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진이 쉬 가시지 않는다. 요즘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아직 16명의 실종자를 찾지 못한 탓이다.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 일가가 조직적으로 도피행각을 벌이며 국민을 조롱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놓고 다양한 진단과 극약처방까지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사고 원인과 구조과정의 문제점들을 짚은 바 있다. 그리고 거국적 조사위원회 구성, 해양경찰청의 해체까지 언급했다. 많은 전문가들도 우리 사회의 문제점으로 물질만능주의, 민관의 구조적인 부정부패, 사이비 종교집단의 거짓과 탐욕, 생명 경시와 도덕적 해이 등을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 개조가 소기의 성과를 얻으려면 제도 쇄신만으로는 어렵다. 국민적 의식 개혁이 몸에 배어 삶의 변화에 이르러야 한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세월호 참사의 진원지는 구원파 교주 유씨 일가이다. 종교를 치부의 수단쯤으로 여긴 일가엔 구원파 산하 모든 기업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는 도구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수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난 상황에 빠진 다수 승객을 방기한 채, 먼저 도망쳐 나온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은 바로 그들이 뿌려놓은 잘못된 구원관이 빚은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드러난 또 하나의 충격은 국가재난구조시스템은 있었으나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컨트롤타워가 없어 대통령과 피해자 가족들이 직면해야 했던 긴장 상황은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이 같은 후진국형 참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장 일변도의 국정철학과 관행화된 민관 유착과 부패사슬이 물질만능, 인명경시 풍조를 낳았다. 그것이 자라나면서 초대형 참사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빈곤은 극복되었지만, 가장 귀한 생명가치를 잃어버렸다. 편향된 산업·인구정책으로 혼인과 가정, 전통적인 공동체 가치들이 훼손되었다. 실로 우리는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의 메시지는 책임의식의 실종이다. 유씨 일가와 세월호 선장, 선원들이 보여준 행태는 승객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그들의 책임의식이 얼마나 저급한 수준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안전운항을 제대로 감독해야 할 해경, 해운조합 등 감독 당국이 사고선박의 과적, 위험운항을 눈감아주고 넘어갔던 일련의 악습도 책임의식의 실종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책임’이라는 말이 현실에서 이처럼 무게를 얻게 된 데는 역설적이게도 세월호 참사가 한몫을 했다. 원래 책임이란 말은 기독교에서 비롯되어 서양 근대를 열고, 윤리와 법의 세계로 넘어왔고, 오늘날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가장 비중 있는 언어가 되었다.

참된 종교와 사이비 종교를 구별하는 핵심은 자유로운 인격이 신과 이웃들에게 져야 할 책임의 존재 여부이다. 사이비 종교는 겉은 제례의식으로 포장하지만 그 속에는 책임의식이 없다. 대신 마귀적·주술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주에게 예속되어 자기행위에 대한 책임의식마저 소멸된다. 거기에서 역사와 국가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찾기는 힘든 일이다. 이 같은 광기를 방치한다면 흑사병보다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2차 대전 후 탄생한 독일 기본법 전문에는 “신과 사람 앞에서의 책임의식에 입각하여 독일국민은 이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을 결의했다”고 적혀 있다. 헌법기관은 물론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역사와 국가 앞에 자기책임이 무엇인지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같은 국가적 슬픔을 정파적 목적에 악용하려는 정치세력들, 위장된 의도를 감추고 순수한 촛불민심을 광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주술사들도 자기책임을 모르는 사이비 이단세력이란 사실을 유의하기 바란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