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현대수묵화 거장 ‘비교해 보는 작품세계’
입력 2014-05-27 02:14
한국과 중국의 현대수묵화를 대표하는 두 작가의 전시가 나란히 열려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수묵화(水墨畵)는 먹으로 그린 그림으로 중국 당나라 때 발전해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에 전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덕수궁관에서 회고전이 열리는 남천 송수남(1938∼2013)과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에서 개인전이 마련된 티엔 리밍(59)은 현대수묵운동의 선두주자라는 점이 공통분모다.
남천은 틀에 박힌 전통산수화에서 탈피해 수묵의 현대적 조형성을 끊임없이 탐구했던 작가다. 1960년대 수묵의 번짐과 얼룩을 이용한 추상작업을 시작했다. 70년대에는 한국적인 이미지로 화면을 채우는 ‘한국 풍경’ 시리즈를 제작하는 한편 강력한 색채로 관념적인 산수를 그리기도 했다. 이어 80년대에는 한국의 야트막한 산하를 너그러운 수평구도로 표현하며 독자적인 화풍을 정립했다.
90년대부터 선보인 ‘붓의 놀림’ 시리즈로 수묵 특유의 대담하고 생동감 있는 작업을 펼쳐 보인 그는 2000년대에는 무념무상의 상태로 ‘긋기’ 작업을 시도했다. 2004년 홍익대 교수에서 퇴임한 후 “나이를 먹으니 색이 좋다”며 만년까지 꽃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나 일평생 수묵의 다양한 변주에 골몰했다. 전통 수묵화의 현대적 변용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에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이번 전시에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고인의 대표작 43점이 소개된다. 남천추모사업회와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동양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저한 훈련으로 실험과 변신을 거듭한 그의 작품은 삶의 질서와 리듬 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을 선사한다. ‘한국적인 것’ ‘한국의 미’는 어떤 것인지 음미해볼 수 있는 전시다. 7월 27일까지(02-2022-0600).
티엔 리밍은 전통 수묵을 살리되 광물성 천연 안료를 이용해 독특한 인물화 작업을 하고 있다. 작품들은 맑고 투명한 물, 따뜻한 햇살과 어울려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림 속 시골 풍경은 안후이성(安徽省) 허페이시(合肥市) 출신인 작가의 고향 모습이기도 하고 중국의 일반적인 농촌의 모습이기도 하다.
‘햇빛, 공기, 물: 티엔 리밍 중국화전’이라는 타이틀로 여는 초대전에 대표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한국 개인전은 처음이다. 전시를 앞두고 지난 22일 방한한 그는 “햇빛과 물, 공기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면서 동방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라며 “이 세 가지의 순수성을 전통 붓질로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시골 처녀’ ‘수영’ ‘도시’ 등 작품은 인물과 풍경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옅은 채색으로 흐릿하게 표현해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그림에 등장하는 소녀나 어린 아이는 동그란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망울을 가졌거나 환하게 웃는 인상이다. 작가는 “자연이 훼손되고 인간성이 상실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도시인들이 피로를 ‘힐링’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30호짜리 작품 한 점이 5억원까지 호가할 정도로 블루칩작가로 부상한 그는 장샤오강, 위엔민준, 쩡판츠 등 요즘 잘 나가는 작가들에 대해 “미술사적인 가치를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예술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오랫동안 살아남고 좋은 작가가 되려면 전통 수묵을 먼저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6월 15일까지(02-720-152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