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닮은 해안 풍광, 곡선으로 휘어진 성터 옛길… 규슈 가라쓰 올레 11.2㎞
입력 2014-05-27 02:10
구멍이 숭숭 난 검은 돌이 널린 해안 용암지대와 주상절리, 완만한 구릉지가 펼쳐져 제주도에 있는 게 아닌가란 착각이 든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해안 좋은 뷰(view) 포인트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펜션이나 카페 등의 건축물 없이 오로지 순도 높은 아름다운 자연만 펼쳐진다는 것. 지난해 12월 탄생한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다.
가라쓰시는 일본 규슈 사가현 북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을 오가는 대륙 교통의 요충지였다. 비행기를 타면 제주도보다 20분 더 걸릴 정도로 우리나라와 가깝다. 그래서인지 해안은 제주의 풍광을 꼭 닮았다. 거기에 국가특별사적으로 지정된 히젠 나고야성터와 400년이 넘은 옛길, 일본 3대 다기(茶器)로 불리는 가라쓰 도자기를 구워내는 가마 마을까지 풍성한 볼거리를 더해 11.2㎞의 가라쓰 올레가 탄생했다.
◇역사공원이 된 임진왜란 전초기지 히젠 나고야성터= 가라쓰 코스는 한나절 걸음으로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제주 올레 마스코트 ‘간세’와 화살표, 리본 등으로 길 찾기도 어렵지 않다. 국도 옆 특산물 판매점인 미치노에키 모모야마텐카이치가 출발점이다.
반짝반짝 잎 사이로 햇살이 핀 조명처럼 비추는 깊은 동백 숲으로 들어선다. 속세는 잊어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 오롯이 걷기에 집중하게 된다. 하늘을 가릴 듯 무성한 고목들이 에워싼 길을 따라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몇몇 진영 터를 지나 임진왜란 당시 침략 기지였던 히젠 나고야성에 닿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가라쓰의 히젠 마을에다 군대를 집결시킬 성을 새로 쌓으면서 자기 고향인 나고야와 똑같은 이름으로 지었다. 우리 입장에선 다소 껄끄러운 장소이기도 하지만 조선이 일본의 침략을 물리친 승전국인 것을 감안하면 이제는 폐허가 된 빈 터에 고목들만 무성한, 역사공원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진영 터들을 연결한 옛길은 성터를 따라 곡선으로 휘어지면서 그 아름다움이 최고조에 달한다. 잘 익은 버찌가 통통통 구르며 뒤를 따른다. 천수대에 오르면 가라쓰 시내와 다도해 못지않은 리아스식 해안과 그 앞으로 대한해협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백제 무령왕의 탄생지로 알려진 섬, 가카라시마(加唐島)가 가깝고 날이 좋다면 대마도까지도 볼 수 있다.
◇제주 해안을 꼭 닮은 하도마사키 산책길= 가라쓰 올레의 대미는 하도마사키 산책길이 장식한다. 하도마사키 캠프장 옆으로 난 해송 숲길을 따라 푸른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오토캠프 사이트 옆을 지나갈 때는 세 개의 석불을 볼 수 있다. 해풍에 닳아 이목구비가 뭉툭해졌는데 그 모습 자체가 푸근하다. 저절로 두 손을 모아 작은 소망 하나 빌어본다.
더 나아가 전망 포인트에 닿으면 건너편 해안절벽에 빼곡히 자리 잡은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풀밭 위 벤치에 앉아 잠시 경치를 구경하며 다리쉼을 하는 여유도 누린다.
동그랗게 오메가를 그리는 하도마시키 해수욕장에 닿으면 가라쓰 코스는 마침표를 찍게 된다. 주차장 한쪽에 들어선 작은 실내 포장마차를 지나치지 말자. 바다의 맛과 향을 음미하며 가라쓰 코스를 되새김 하는 즐거움이 남아 있으니.
규슈=글 김 난, 사진 고영준 쿠키뉴스 기자 nan@kukimedia.co.kr [취재협조 JNC 일본여행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