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두번째 베이비박스에 첫 아기 오던 날… “생명보호 우선” “아동유기 조장”
입력 2014-05-26 04:55
군포 새가나안교회, 경기도에서 첫 설치·운영
‘삑 삑 삑.’ 지난 9일 오후 10시30분 경기도 군포시 번영로 새가나안교회에 경보음이 울렸다. 3층 기도실에서 CCTV를 보던 김은미 집사가 한달음에 1층으로 내려갔다. ‘첫 아기’였다. 교회는 하루 전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서울 난곡로 주사랑교회에 이어 두 번째. 경기도에서는 최초로 설치된 베이비박스다. 불과 하루 만에 ‘버림받은’ 아기가 들어왔다.
김 집사가 베이비박스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울지도 않고 누워 있었다. 태어난 날짜와 이름을 적은 메모도 없었다. 김 집사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아 교회 3층에 마련된 ‘아기 보호실’로 옮겼다. 두 개의 아기 침대와 각종 아기용품들을 구비해 놓은 곳이다. 아기는 3시간 정도 보호실에 머무르다 한림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관계자는 아기가 태어난 지 3∼4일 지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부모에게서 옮은 질병을 앓고 있었지만 다른 장애는 없었다. 10일간 입원 치료를 받고 완쾌된 지호(가명)는 경기남부 일시보호소로 옮겨졌다.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후 교회 풍경은 달라졌다. 교인들이 조를 짜서 24시간 4교대로 CCTV를 모니터링하며 아기를 기다린다.
교회 안에 마련된 네 곳의 기도실과 사목실 등에는 붉은색 경광등이 설치됐다. 아기가 들어오면 경광등에 불이 켜지고 알림음이 울린다. 버려진 아기의 입양을 희망하는 교인도 모집 중이다.
경기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아동복지과 관계자는 “법을 어기며 아기를 버리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는 일이다. 반대 여론이 있더라도 베이비박스를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설치 자체가 불법은 아닌 탓에 강제 철거는 쉽지 않다. 서울의 베이비박스 역시 보건복지부와 서울시가 철거 방침을 밝혔지만 생명 보호가 우선이라는 반대 여론에 밀려 여전히 운영 중이다. 새가나안교회 임병철(46) 부목사는 “베이비박스가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고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법이 우선일 순 없다”며 “아기들이 잘 자라 이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에 이어 경기도에도 베이비박스가 설치되면서 유기 아동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2012년 8월 개정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이후 서울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는 지난해 말까지 293명에 달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른’들의 법은 아기들을 지켜주기 버거운 상태다. 현행법상 베이비박스 설치·운영에 관한 규정은 없다. 버려진 아기가 발견되면 지자체가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모호한 법 조항만 있다. 아동 입양 시 친부모의 출생신고 의무 규정을 완화하도록 규정한 입양특례법 개정안은 1년 이상 국회에 계류돼 있다.
군포=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