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규정 없는 베이비박스…경기도, 지원도 철거도 쉽지 않아

입력 2014-05-26 03:54


“어린 생명 보호” “아동 유기 조장” 논란 재연

이름과 출생일시조차 모른 채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지난 9일 경기도 군포 새가나안교회의 ‘제2호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의 미래는 향후 입양 성공 여부에 따라 엇갈릴 가능성이 크다. 유년시절을 보낼 곳이 화목한 가정일지, 아니면 보육시설일 지는 약 3개월 후에 결정된다.

서울에 이어 경기도에도 베이비박스가 설치되면서 버림받는 아기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새가나안교회는 교인들의 입양이나 그룹홈(공동양육) 등의 방식으로 아기들을 키울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해에만 서울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 200명 이상의 아기가 버려진 점에 비춰보면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불투명한 ‘베이비박스 아기’의 미래=경기남부 일시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는 이 아기는 현재 별다른 이상 없이 편안한 상태로 지내고 있다. 일시보호소 관계자는 “수유할 때만 빼고 칭얼대지도 않고 잠을 잘 잔다”며 “건강상태에도 문제가 없어 일반 유아 침대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버려지면 관할 지자체의 일시보호소를 거쳐 보육시설로 보내진다. 아직 이 아기는 입양을 가게 될지, 도내 보육시설로 가게 될지 정해지지 않았다. 최대 6개월까지는 일시보호소에서 자랄 수 있지만 이후에도 양부모가 나타나지 않으면 경기도 내 아동양육시설(보육원)로 가야 한다. 일시보호소 관계자는 “아기가 이곳을 나가 어디로 가게 될 지는 3개월 후쯤 결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베이비박스 아기’들은 새 가정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확률이 적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일시보호소에 맡겨진 아기들의 경우 절차상으로는 입양이 가능하지만 실제 입양과정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입양을 희망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기관을 찾는데 베이비박스 아기들은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입양기관으로 갈 수 없다. 베이비박스 아기의 입양을 원하면 서울시에 의뢰해야 하지만 이런 입양 희망자는 거의 없다. 이렇다보니 지난해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에 들어온 유기아동 239명 중 단 1명만이 입양돼 새 부모의 품에 안겼다.

다행히 새가나안교회 성도들은 베이비박스 아기를 입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임병철(46) 부목사는 “아기들이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는 상처를 씻고 새 가정에서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입양이나 그룹홈과 같은 대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예산부터 확보해야=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들은 길거리에서 발견된 기아(棄兒)나 미아(迷兒)와 같은 행정적 절차로 처리된다. 현행법상 베이비박스 설치·운영에 관련된 규정이 아예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불거지는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다. 복지부는 2005년 버려지는 아이들의 양육 업무를 지자체로 모두 이관했다. 버려지는 아이들은 해당 지자체가 책임지게 돼 있다. 그런데 베이비박스의 성격 자체가 ‘합법’도 ‘불법’도 아니다보니 지자체가 이를 운영하기 위한 예산 자체를 확보할 수가 없다.

경기도가 ‘제2의 베이비박스’에 난색을 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보통 지자체에서 유기된 영·유아에 들이는 병원비는 행려자급여와 의료보험으로 처리된다. 지난 9일 버려진 아기의 치료비는 하루 80만원 수준으로 10일간 입원비까지 포함해 10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당초 새가나안교회에서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예외적으로 한림대병원에서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2호 아기부터는 군포시에서 부담해야 한다.

전국에서 유기 아동들의 ‘쏠림 현상’도 예산 부족을 부채질한다. 지난해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에 들어온 유기 아동은 252명으로 5년 전(29명)에 비해 8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전국 유기아동 수는 같은 기간 202명에서 235명으로 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국의 유기아동이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서울시 관악구로 몰려들면서 벌어진 현상”이라며 “다른 지역에서 태어난 아기까지 서울시 예산으로 보살피다 보니 예산 부족 문제가 더욱 가속화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경기도 아동복지과 관계자는 “베이비박스를 그대로 둔다면 전국의 유기아동이 이곳으로 올 것”이라며 “예산 등의 문제로 경기도에 부담이 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기도는 베이비박스를 강제 철거할 방침이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9월 “베이비박스가 유기아동 보호조치를 위반하고 있다”며 입양인 출신 정모(41)씨가 관악구를 상대로 제기한 인권침해 진정을 인권위가 기각해 철거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인권위는 “베이비박스에 아동이 들어오면 신고를 거쳐 아동복지법에 따라 보호조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침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철거를 강행할 경우 오히려 경기도가 유기아동 보호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군포=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