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온누리상품권 사면 인센티브” 中企에 떠안기기 논란

입력 2014-05-26 02:01


중소기업청이 지원 사업자 선정 때 온누리상품권 구매 기업에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부진한 상품권 판매 실적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또 하나의 규제를 만든 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5일 중기청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중기청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백만 누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백만 누리 캠페인은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중기청이 발행한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을 5만 중소·중견기업이 업체당 매년 100만원 이상 구매하도록 독려하는 운동이다. 중기청은 이 캠페인을 통해 연간 500억원 이상의 상품권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캠페인이 큰 호응을 얻지 못하자 최근 중기청은 중소·중견기업과 유관기관을 상대로 캠페인 동참 기업에 지원 사업자 선정 때 혜택을 주겠다고 홍보하고 나섰다. 캠페인 참여 기업에 인센티브(가점)를 부여하는 사업으로는 ‘월드클래스(WC) 300’ ‘병역지정업체’ ‘글로벌강소기업 육성’ ‘기술개발자금 지원사업’ ‘경영혁신 마일리지 사업’ 등이 거론된다.

한 지방중기청 관계자는 “백만 누리 캠페인에 참여할 경우 내년도 지원 사업자 선정 때 가점을 주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기업들이 유가증권을 구입하라는 권고에 부담을 가질 수 있어 지금은 단순히 소개하는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지방중기청 관계자는 “온누리상품권 구매를 통해 전통시장 활성화에 참여하는 것도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라고 생각해 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기청은 지난달 23일 지방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진흥공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에 공문을 보내 캠페인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난감해하는 표정이다. 중기청 공무원이 기업에 전화를 걸어 상품권 구매 계획을 물어보는 것 자체만으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중기청 지원 사업을 신청해야 하는 기업들의 반발이 크다. 한 중소기업 임원은 “중소기업 대부분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어 병역지정업체로 지정되길 바라는데 어떻게 상품권을 구매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권고가 아니라 강매 성격이 더 짙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그동안 동반성장을 명분으로 대기업에 온누리상품권 구매를 독려해왔다. 그 결과 2009년부터 5년간 판매액 약 1조원 중 대기업 구매 비율이 40%를 넘는다. 하지만 지난해 대기업들이 업황 부진 등을 이유로 구매를 줄이자 2013년 온누리상품권 판매액은 3257억원으로 전년보다 1000억원 이상 급감했다.

이에 중기청은 지난해 말 부랴부랴 중소·중견기업 단체를 모아 상품권 구매촉진 협약을 맺고 백만 누리 캠페인에 돌입했다. 그러자 중기청이 현실적 대안은 만들지 않고 대기업에 이어 이제 중소기업에까지 상품권을 떠넘기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인들은 법령이나 지침으로 규정된 것만이 규제가 아니라 이 같은 캠페인도 기업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규제라고 지적한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