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매카시즘, 민주화이후 시작됐다” 서울대 박태균 교수 주장

입력 2014-05-26 02:25

미국과 서구에서 매카시즘(McCarthyism)이 냉전의 시작과 함께 나타난 것과 달리 한국 현대사에서는 탈냉전 이후, 즉 1987년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나서야 시작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 24일 한국역사연구회 주최로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 역사에서의 매카시즘’ 학술회의에서 ‘현대사에서 매카시즘’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매카시즘은 1950∼54년 미국에서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 주도로 일어난 반(反)공산주의 열풍을 일컫는 말이다.

박 교수는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과 같은 ‘제1세계’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사회 운영의 기본 철학과 원리로 뒀기 때문에 공적 공간에서 사상적 통제를 위한 제도와 법률을 공개적으로 적용할 수 없었다는 데 주목했다. 따라서 1950년 미국에서 매카시즘의 횡행은 특정 현안에 대한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확산하면서 법률이나 제도와 같은 기제 없이도 사상적 통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반공법이나 국보법이 강력하게 작동한 민주화 이전의 사상통제 현상을 매카시즘이라 부를 수 없으며, 통제를 위한 법률·제도가 정통성을 잃은 민주화 이후에야 역설적으로 매카시즘이 나타났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후 불거진 ‘북한 조문’ 파동, 박홍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발언에 따른 일련의 파장, 노태우 정부 전반기 전향적 대북정책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세력의 잇따른 반공 발언 등을 그 사례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확산한 과정은 1994년 조문 파동과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을 통해 ‘친북 좌파’를 척결해야 한다는 광풍에 휩싸인 한국 상황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한국에서 매카시즘의 결정판은 2012년 출간된 ‘종북 백과사전’”이라며 “이런 주장이 한국 사회의 40%가 넘는 구성원들로부터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카시즘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