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식탁공동체 육광철 목사 “배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막 퍼드립니다”

입력 2014-05-26 02:14


“아이고, 어르신! 식사하고 가세요. 맛있는 보리야채비빔밥 드시고 가세요.”

지난 21일 오후 4시 서울 남부순환로 210길 동양교회 주차장 앞. 위드식탁공동체(With Table Community) 대표 육광철(62·동양교회) 목사가 행인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잘 모르는 이들은 호객행위를 하는 것으로 오해할 법했다. “무슨 일이에요” “얼마예요”라고 묻거나 스스럼없이 초대에 응하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귀찮은 듯 냉담한 표정으로 지나갔다. 육 목사는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식사를 권했다.

“거절당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이렇게 해야 부담 없이 식사하러 올 수 있거든요.”

주차장에 마련된 천막식당엔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때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로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었다. 식사를 마친 70대 할머니는 자원봉사자에게 식사를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일 하러 나간 남편의 저녁식사를 위해서였다. 나이가 들고 몸까지 불편해 식사 준비를 하는 것도 힘겹다고 했다. 식사를 마친 이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던 조의숙(52) 전도사는 “지역주민뿐 아니라 혼자서 식사 준비를 하기 힘든 어르신들도 멀리서 찾아오신다”면서 “혹시 배식하는 날을 잊어 끼니를 거르실까봐 문자메시지도 보내 드린다”고 말했다.

육 목사는 2011년 지역주민을 전도하기 위해 점심 배식 봉사를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2시간 동안 교회 식당을 개방, 성도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대접했는데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때 식사하라고 어르신이나 노숙인, 이웃들에게 권하면 이렇게 말해요. ‘교회 전도하려는 거지? 그럼 난 안 가.’ 그래서 6개월 만에 ‘위드식탁공동체’로 이름을 바꾸고 교회 주차장에 간이식당을 만들어 식사를 대접했죠. 교회 오라는 말도 일절 안 하고요.”

이후 위드식탁공동체를 찾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설립 초기에는 하루 50인분을 대접했지만 지금은 450인분을 대접한다. 배식하는 요일도 매주 수요일 하루에서 수요일과 토요일 이틀로 늘렸다. 수요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3시까지 식사를 대접한다.

교회의 규모와 외형이 커서 배식 봉사를 늘린 것은 아니다. 동양교회는 성도가 60여명에 불과한데도 헌금의 절반가량을 배식봉사에 사용한다. 한 끼가 아쉬운 가난한 이들에게만 식사를 대접하는 것도 아니다. 식사를 하러 오는 하루 450여명의 이웃 가운데 400여명은 빈곤층이라기보다 교회 이웃의 상인이나 주민들이다. 말 그대로 ‘퍼주기식’ 봉사를 하는 이유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계층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서다.

“6개월 정도 하다 보니 정말 가난한 분들이 눈에 보여요. 쭈뼛거리며 들어와서 밥을 먹는데 소매 끝이 다 해졌어요. 가시기 전 비닐봉투에 이틀치 식사를 싸서 드렸어요. 움직이기 힘든 분은 배달도 해 드리고요. 그랬더니 자원봉사자에게 부도가 났다거나 중병을 앓았다는 등 개인 사정을 말하더군요. 생각보다 경제적으로 힘든 분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때부터 공동체의 목표는 ‘부담 없이 와 드시게 하자’로 바뀌었다. 남녀노소 누구든 배고프면 와서 식사할 수 있게 했다. 그래야 소외계층이 자연스럽게 밥 먹으러 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육 목사는 이런 식사공동체만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진짜 소외계층’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있었던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보세요.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교회는 이들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이들은 숨어 있어서 국가도 찾기 힘들어요. 근데 누구든 올 수 있게 하니 찾아오더군요. 서로 식구가 됐을 때 자연스럽게 사정을 알고 도울 수 있어요.”

육 목사는 얼마 전 복지법인 등록 절차를 시작했다. 교회가 있는 지역뿐 아니라 전국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그는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법인을 설립해 ‘제2의 송파 세 모녀’ 같은 이들을 찾아내 돕고 싶다고 했다.

“NGO를 설립한 뒤 각 교회를 거점으로 식탁공동체를 설립하려고 합니다. 지금처럼 실수혜자가 10%여도 괜찮아요. 숨어서 남몰래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요.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것은 교회의 의무입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