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광화문 哀歌

입력 2014-05-26 02:20


오랜만에 시내 나들이를 다녀왔다. 우리 집 전철 노선에서 시내란 광화문 방향을 말한다. 선뜻 바깥약속에 응한 까닭은 근래의 광화문 주변이 궁금해서이다.

광화문에서 덕수궁까지 이르는 보도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게 헌화하거나 양초 한 촉씩 놓을 장소가 생겨 있다. 잠시 멈춰 묵념한다. 조금 더 가니 실종자의 무사귀환과 가신 이의 명복을 비는 노란 리본 행렬이 덕수궁 담 따라 줄지어 나부낀다. 리본마다 적힌 아픈 말씀을 차마 읽을 자신이 없다. 그러고 보니 덕수궁 수문장 의식은 세월호 참사로 당분간 축소 운영한다는 공지사항을 읽은 듯 만 듯 스친 것 같기도 하다.

귀갓길. 대형 서점이 있고 지하철역이 있는 광화문역 지하보도로 들어선다. 겨울이면 매운바람이 세차게 불어 닥치는 9번 출구 쪽이다. 지지난해 여름 어느 날이던가. 하필 그 순간에 그곳을 지났다. 최소 50명은 넘을 경찰이 일고여덟 명 남짓한 휠체어 장애인과 봉사자로 보이는 몇 명을 상대로 대치하고 있었다. 휠체어 탄 지체장애자 몇 명에 어마어마한 경찰인력이라니. 서울에 경찰이 남아도는 모양이었다. 비겁한 이 소시민은 경찰 누구와도, 또 장애인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면서 지나쳤다. 그때는 ‘무기한 농성장’이란 표지가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무기한 농성장’이란 표지가 붙었다. ‘무기한’이란 단서를 붙일 만큼 어떤 응답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관철하기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그들이다. 우리나라 장애자 전부의 뜻은 아닐지라도 다수의 뜻이긴 할게다. 그들의 청원에 수녀님도, 스님도, 물론 일반인도 서명하고 간다. 백만, 이백만 명이 서명하면 무엇 하나. 아무도 듣지 않고,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생각해보라. 얼마나 기막히며 기운 빠질 노릇인지.

그들은 지금도 그곳에 있다. 광화문역 지하 9번 출구 계단 근처. 그곳을 지날 때면 매번 서명할 수도 없고, 사실 서명이 뭘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대책을 세워주는 당국도 아닌 보통시민은 되도록 그쪽과 시선 얽히지 않으려 애쓰며 빠른 걸음으로 그들 앞을 지난다.

덕수궁돌담길, 정동길,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엔 본래 연가(戀歌)가 있다. 오늘 광화문에는 세월호 참사의 노란 리본 물결과 장애인의 무기한 농성이 있고, 애가(哀歌)가 흐른다. 2014년 5월이 다 가도록.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