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혁상] 개혁은 한두 사람으로 안 된다
입력 2014-05-26 02:18
우리 헌법 전문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 대한국민은 (중략)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중략)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중략) 우리들과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 이 문구를 한번쯤은 봤을 법하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은 ‘자유 권리 책임 의무 안전 행복’이란 단어는 민주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보편적인 상식들을 무너뜨려 버렸다.
사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의 고질(痼疾)이었으면서도 치유하기 어려웠던 적폐가 한꺼번에 터져버린 일대 사건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모든 유형의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온 국민이 분노와 절망, 좌절감을 몸으로 느낀 것도 이 때문이다. 사적 이익을 위해 생명에 직결되는 여러 안전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이를 감독해야 할 주체는 눈감아 버리기 일쑤였고,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사후대응 등이 결국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와 후속 개혁조치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국가 대개조 수준의 공직 개혁과 사회 전반의 시스템 혁신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천명했다. 여기서 대통령이 밝힌 공직 개혁, 비정상의 정상화 방침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부조리와 비리를 개혁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 사회의 미래를 논할 수 있겠느냐는 말은 그래서 더욱 와 닿는다.
그러나 한편으론 몇 년에 한 번씩 되풀이되는 큰 사건, 사고를 겪고 대응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우려가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직후 정부는 매번 제도 개혁을 주장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관피아(관료+마피아)는 물론 조직이기주의, 민관 유착은 해운업계뿐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넓고 깊게 퍼져 있다. 언젠가 사석에서 만난 정부의 한 인사는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민간업체 협회의 이사진 모두가 업계의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정부 기관 출신 인사들로 이뤄져 있는데, 이는 관행처럼 이어져오면서 누구나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업계의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후발주자들이 비슷한 여건에서 경쟁하고 싶어도 그럴 꿈도 꾸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이런 상황은 정부 또는 산하기관, 관련 단체 등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볼 수 있는 것들인 셈이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끼리끼리문화, 민관 유착의 폐해를 지적했다. 그러나 역대 정부가 매번 개혁을 주장해도 이를 뒷받침할 여건이나 상황을 제대로 갖추긴 어려웠다. 정권의 5년 임기는 생각보다 짧다. 취임 후 2년만 지나도 공직사회 개혁의 동력을 찾아내긴 어려울 정도다.
국가 대개조, 사회 시스템 개혁은 대통령 한 사람이 나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강골검사 출신의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힘을 보탠다 해도 마찬가지다. 개혁을 추진할 국정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이를 감시하고 독려하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사람은 우리 국민들이다.
개혁은 단순한 ‘레토릭’이 되어선 안 되고, 한두 사람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기본을 지키는 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개혁에 동참하는 실천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숙제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