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江에서 생명의 江으로] 울산 태화강에 바지락이 돌아왔다

입력 2014-05-24 02:17


울산의 공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죽음의 강’이 됐던 태화강이 ‘생명의 강’으로 다시 돌아왔다. 산업화로 강이 오염되면서 1987년 전면 중단된 바지락 채취가 지난 연말 합법화된 게 태화강이 살아났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태화강은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 최대의 바지락 종패(種貝·씨조개) 생산지였다. 20일 오후 1시쯤 울산 남구 태화강 하구의 바지락 위판장 앞 물양장에는 어선들이 바지락 채취 출항을 위해 분주했다. 어선 ‘영남호’가 우렁찬 엔진소리와 함께 천천히 물양장을 빠져나갔다. 태화강 하구의 수심은 얕았고 강물이 깨끗해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태화강 하구에서 30년째 바지락 조업을 해왔다는 선장 이두지(59)씨는 “울산의 명물 바지락을 합법적으로 조업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며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씨는 30년 전 태화강은 바지락 천국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성수기인 10∼11월에는 변변치 않은 배 한 척으로도 2∼3시간 동안 15∼20t씩의 바지락을 수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업화로 강이 오염되면서 27년 전 울산시가 조업 금지령을 내렸고 이후 무허가 수상가옥을 짓고 주로 야간에 몰래 바지락을 채취해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10여분을 내달려 태화강 하구에 다다르자 수심이 1m 미만으로 얕아졌다. 바지락 어장은 태화강 하구 명촌교∼현대자동차 수출부두 구간 146㏊다. 이미 이곳에는 다른 어선들이 ‘형망’을 배 위로 끌어올리는 등 바지락 채취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씨도 어선 뒤에 특수 제작된 1m 크기의 갈고리에 길이 10여m의 그물이 걸린 형망을 태화강에 던졌다. 형망은 강 밑바닥을 훑어 바지락을 채취하는 장비다. 이씨는 5분쯤 지나 형망을 서서히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강물에 흔들어 흙을 씻어낸 형망 안에는 지름 2∼3㎝ 크기의 새카만 바지락이 가득 들어 있었다. 덤으로 따라 올라온 피조개와 고둥, 미역 등도 보였다.

채취 작업은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형망을 와이어로 끌어올린 뒤 안에 든 바지락을 삽으로 퍼서 선별대로 올렸다. 선별 기계가 앞뒤로 진동하며 작은 종패들을 탈탈 털어냈다. 어민들은 선별된 바지락 종패들을 다시 삽으로 퍼 어망에 담았다.

형망에 올라오는 바지락 중에는 빈껍데기도 더러 눈에 띄었다. 이씨는 “현재 태화강 하구는 3∼4년 동안 바지락 조업이 거의 중단돼 바닥에 종패나 성패의 빈껍데기가 많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씨가 1시간가량 조업해 수확한 바지락 종패는 100㎏ 정도였다. 이씨는 20㎏짜리 어망 5개에 가득 담긴 바지락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뱃머리를 위판장 쪽으로 돌렸다.

바지락은 채취가 합법화되기 전엔 음성적으로 거래됐기 때문에 20㎏당 2만원에 팔렸지만 합법화된 후에는 4만∼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1시간 조업으로 20만∼25만원을 번 셈이다. 어민들은 주로 월∼금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조업하는데 하루에 많게는 20㎏짜리 30어망의 바지락을 채취한다고 한다. 하루 15만원 정도인 어선 유류비를 빼고도 하루 12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리고 있다.

태화강 바지락은 매일 오후 5시 울산수협에서 경매로 중도매인에게 판매돼 주로 남·서해안 바지락 어장에 종패로 공급된다.

울산=글·사진 조원일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