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江에서 생명의 江으로] 썩은 내 진동 6급수서 1급수로… 동식물 427종 서식
입력 2014-05-24 02:43
한국의 ‘산업수도’로 불리는 울산.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고 중공업 단지가 본격적으로 육성되면서 울산의 공업용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 공단 조성으로 인해 인구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해 태화강에 하수 유입량이 증가했다. 경제성장기의 대한민국은 환경에 대한 의식이 희박했기 때문에 하수처리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정화조를 거치지 않고 밀려든 공장 폐수와 생활오수는 태화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었다.
급기야 1990년대 들어서 태화강 수질은 전국 하천 중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공업용수로 공급되던 맑은 강물은 검붉은 물로 긴 기름띠를 두르고 있었다. 1996년 태화강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은 11.3ppm으로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됐다.
결국 2000년 6월 23일 태화강의 물고기는 떼죽음을 당했다. 태화강이 ‘죽음의 강’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신호였다. 태화강변에서 한평생을 살아 온 박근태(75)씨는 “물고기가 죽어 떠오를 즈음, 강변에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인분이나 가축분뇨 냄새는 그에 비하면 구수할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이 시기 오염된 태화강은 대한민국의 산업발전에 희생된 자연환경을 상징했다.
현재 태화강에는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누치떼가 발견되고 있다. 울산 공업화 이후 사라졌던 바지락도 27년 만에 돌아왔고 연어떼도 찾아왔다. 은어와 황어 가물치 고니 원앙 백로 수달 삵 등 모두 427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명의 강으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국내 멸종위기 190종 가운데 31종이 태화강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 평균 1만5000명, 휴일엔 3만명이 찾는 생태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2005년부터 전국 규모의 수영대회와 조정, 카누대회 등이 열려 죽음의 물에서 1급수로 변한 태화강의 기적을 나라 안팎에 전하고 있다.
이처럼 태화강이 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급속한 공업화와 도시화로 죽음의 강이 돼 버린 태화강을 되살리겠다’는 울산시와 환경단체 등 시민들의 강력한 의지와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울산환경협의회와 태화강시민환경감시대 등 15개 단체가 물속 쓰레기 제거작업 등 자원봉사를 펼쳤다. 또 141개 기업체와 민간단체도 ‘1사 1하천 살리기 운동’에 동참해 태화강 둔치를 정화하고 꽃을 가꿨다.
울산시는 2002년 민선 3기가 출범하면서 경제 성장의 기반 위에 생태효율성을 도입한 에코폴리스 울산선언(2004년)과 함께 태화강 마스터플랜(2005년)을 수립해 지역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환경정책을 추진했다. 시는 마스터플랜에 따라 지난해까지 수질개선 사업에 총 5853억원, 친수공간 조성사업에 3161억원을 들였다.
울산시 관계자는 “태화강의 오염원은 수영강과 마찬가지로 주로 생활하수와 오폐수였다”며 “수질이 1등급까지 개선된 데는 차집관로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평가했다.
태화강이 정비되기 이전에는 태화강을 경계로 중·남구의 주택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활하수는 우수(빗물)관로를 통해 그대로 태화강으로 유입됐다. 하지만 울산시는 태화강의 물고기가 떼죽음 당한 2000∼2005년 450억원을 들여 주거지역에 총 224㎞의 하수관을 설치해 오폐수가 강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했다.
현재 울산지역 하수관거 3818㎞ 중 3660㎞(95.9%)가 생활오수와 빗물을 분류해 태화강 등 주요 하천의 오염원을 차단하고 있다. 여기에 시는 그물망 같은 하수관로에 잡히지 않는 생활하수의 태화강 유입을 막기 위해 강변 배수구로 나오는 생활하수를 한데 모아 하수처리장으로 보내는 대형 ‘우수박스’ 14개를 만들었다.
시는 또 태화강 상류를 1급수로 되살리기 위해 하루 6만㎥ 규모의 생활하수 및 공장·축산폐수의 방류수 수질을 법정기준치보다 최대 10배까지 강화할 수 있는 하수처리시설을 만들었다.
2002∼2007년에는 350억원을 들여 하류지역인 삼호교∼명촌교 88㎞ 구간의 강바닥에 50㎝ 이상 쌓였던 오염퇴적물 67만㎥를 걷어냈다.
그 결과 태화강은 1996년 BOD 11.3ppm에서 2009년 2ppm(1등급)으로 대폭 개선됐다. 지난해는 1.4ppm으로 나타났다. 부산 낙동강 2.2ppm의 절반 수준이다. BOD는 수치가 낮을수록 물이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화강은 2013년 환경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전국 12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울산시는 생태하천으로 되살아 난 태화강에 2018년까지 16개 사업 14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도심 구간의 하천환경을 정비하고 태화강변을 따라 100리 자전거길을 연결하겠다”며 “상류지역 선바위 공원의 생태하천 조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람사르 협약에 가입하는 등 세계적인 도심 속 생태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