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사랑의 과학
입력 2014-05-24 02:58
여름 간식인 햇옥수수가 벌써 출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옥수수를 삶다 보면 점점이 까맣거나 보라색을 띤 알들이 박혀 있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같으면 노란 알과 까만 알 중 어느 게 더 맛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치고 말지만, 그처럼 색깔이 다른 이유를 끝까지 연구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있다. 수도승 같은 삶을 살았던 바버라 매클린톡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노란 옥수수 알 가운데 까만 알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걸 보고 의문을 품은 바버라는 까만 알만 골라 심은 결과 마찬가지로 까만 알 사이에 노란 알이 군데군데 섞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그녀는 1951년 유전학 심포지엄에서 ‘튀는 유전자’ 이론을 발표했다. 튀는 유전자란 특정 기능을 발휘하는 유전자의 한 단위가 통째로 자리를 옮기는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을 말한다.
당시는 유전자의 구조를 해명하려는 분야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구조를 밝힌 후에도 유전자는 기다란 실에 차례차례 꿰어진 모습이거나 혹은 차곡차곡 쌓인 벽돌처럼 고정된 것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그녀의 연구는 가당치 않은 것이었으며, 바버라는 무시와 조롱에 익숙해져야 했다. 하지만 1970년대 박테리아 및 초파리, 고등동물 등에서 튀는 유전자가 발견되면서 그녀는 1983년 마침내 여성 단독으로는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단순한 성공신화를 들먹이고자 이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아니다. 튀는 유전자의 입증은 그녀의 작업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확인됐다. 즉 튀는 유전자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 방식이나 이를 설명하는 그녀의 방식은 아직도 학계에서 수용되지 않고 있다. 그녀는 유전자가 자리바꿈을 하는 원인에 대해 세포 전체, 그 세포가 들어 있는 생명체 전부, 나아가 환경 전반까지의 상호 소통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학자들이 개체 간의 중요한 차이를 보지 못한 채 ‘왼쪽’ 아니면 ‘오른쪽’ 하는 식으로 분류만 시키느라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놓친다고 주장했다. 실험과 논리만이 아닌 생명에 대한 사랑이 과학에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실험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옥수수들이 스스로 가르쳐줬다는 그녀의 연구관은 다음의 한 마디에 요약돼 있다. “정말로 종양을 이해하려면, 나 자신이 종양이 되어야 해요.”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