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태원준] 에디슨은 틀렸다

입력 2014-05-24 02:57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등장하는 침대 광고가 있다. 요즘도 TV를 켜면 가끔 나온다. 1920년대 에디슨이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인데 이렇게 말한다. “잠은 인생의 사치입니다. 저는 하루 4시간만 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숙면을 취할 때 말이죠.” 광고의 메시지는 그 침대에선 에디슨처럼 4시간만 자도 괜찮다는 것일 테지만, 그래도 에디슨이 침대 선전에 나오다니 정말 아이러니다. 그는 잠자는 걸 아주 싫어했다.

지독한 일벌레였던 에디슨은 잠을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잠을 자는 건 “어리석은 일”이며 “나쁜 습관”이라고까지 했다.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도 아마 잠이 없는 자기한테 매우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에디슨은 남도 못 자게 했다. 연구실이나 회사에 직원을 채용할 때면 면접시간을 새벽 4시로 잡았다. 그 시간에도 말똥말똥 깨어 있는 사람을 뽑으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뽑힌 이들도 에디슨의 ‘불면(不眠) 행군’을 따라가지 못했다. 구석진 곳에 숨어서 조는 이들이 많아지자 그는 직원들이 못 자게 감시하는 직원을 새로 뽑았다.

에디슨이 이렇게 잠 안 자고 일궈낸 회사는 지금 미국 최대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돼 있다. 그의 성공은 미국사회에 불면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 잡게 했다. 자수성가한 이들을 조명할 때면 얼마나 잠 안 자고 일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빠지지 않았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10시간 자는 사람이 서너 시간 자는 사람을 어떻게 이기겠느냐”고 단언했다.

미국식 시장경제가 성공한 데는 이렇게 줄어든 수면시간도 한몫했을 것이다. 시장은 소비가 있어야 돌아간다. 잠자는 시간에 소비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소비자가 오래 깨어 있을수록 뭐가 됐든 더 많이 팔리고 시장도 더 활기를 띠게 된다.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들은 ‘누가 덜 자나’ 경쟁을 해온 건지도 모른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이 지난해 6개 국가의 평균 수면시간을 조사했는데 동서양의 대표적 경제 강국인 미국(6시간31분)과 일본(6시간22분)이 제일 짧았다.

이렇게 잠 안 자고 달려온 인류를 향해 최근 과학자들이 신랄한 비판과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러셀 포스터 교수는 BBC 인터뷰에서 잠을 줄여 일하는 인간을 “지구상에서 가장 오만한 종(種)”이라고 규정했다. 우리 몸에는 자연환경에 맞춰진 생체시계가 있다. 40만년 동안 낮과 밤의 사이클에 따라 작동해 왔다. 그 리듬이 어긋나면 반드시 병이 나게 돼 있는데 인간은 오만하게 그 시계를 거스르려 한다는 것이다.

요즘 미국인들은 에디슨의 ‘오만함’을 조금씩 깨닫는 모양이다. 아리아나 허핑턴이 대표적이다. 2005년 허핑턴 포스트를 창간한 그의 자서전 ‘제3의 성공’은 ‘2007년 4월 6일 나는 피를 흥건히 흘린 채 홈오피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로 시작한다. 책상에서 일어서다 실신해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고 광대뼈가 부러졌다. 매일 18시간 이상 일하며 누적된 수면 부족이 원인이었다. 병상에 누워 ‘이런 삶이 성공한 것일까’ 한참 생각했다는 그는 허핑턴 포스트의 근무 환경을 뜯어고쳤다.

퇴근 후엔 직원들에게 이메일 답신을 요구하지 않았고, 사무실 냉장고마다 웰빙 음식을 채웠다. 그리고 ‘수면실’을 만들었다. 뉴욕 사무실에 대당 8000달러짜리 수면캡슐을 여러 개 들여놨다. 캡슐에 누우면 뚜껑이 닫히고 숙면에 필요한 완벽한 어둠이 조성된다. 직원들은 근무 중에도 자유롭게 여기서 잘 수 있다. 에디슨은 사람들에게 ‘인공 불빛’을 선물했고 허핑턴은 직원들에게 ‘인공 어둠’을 제공했다. 이렇게 바뀌는 데 100년이 걸렸다.

하지만 허핑턴은 아주 특이한 경우이고 미국은 여전히 수면 부족 사회다. 최근 후생노동성이 ‘건강증진 수면수칙’을 발표한 일본도, 수면장애 요인을 줄이려고 ‘빛 공해’ 규제에 나선 한국도 잠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1월 뉴욕타임스는 수면 부족이 누적되면 어떤 병에 걸리기 쉬운지 그동안 축적된 연구 결과를 잘 정리했다. 먼저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의 위험이 높아지고 여성은 유방암을 조심해야 한다. 하루 7시간 이상 자지 않으면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감기에 걸릴 확률이 세 배 높아지고 약도 잘 안 듣는다. 비만 위험도 증가한다.

공부한 뒤에는 충분히 자야 학습한 걸 더 많이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 러셀 새너 교수는 “한마디로 아프고, 뚱뚱하고, 멍청해진다”고 했다. 새너 교수는 수면 부족을 담배에 비유했다. “50년 전 우리는 담배가 얼마나 나쁜지 잘 모르고 별 대책 없이 피웠다. 지금은 모두가 그 해악을 알고 정부도 뒤늦게 규제에 나섰다. 현재의 수면 부족 문제는 50년 전 담배의 상황과 똑같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얼마 전 대규모 담배 소송을 시작했다. 몇 십년 뒤 ‘수면소송’에 나서는 상황이 오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잠자기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듯싶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