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문화재청의 자정 결의

입력 2014-05-24 02:57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항상 공명정대하게 하고, 어떠한 경우라도 사익추구 등 공정한 업무수행에 장애가 되는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겠다. 어떠한 경우라도 직무관련자로부터 금품·향응·편의제공 등을 받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 공정한 업무 집행을 위하여 지인 등의 청탁·알선을 거절하고, 일체의 청탁·알선 행위도 하지 않겠다.” 문화재청이 23일 정부대전청사에서 개청 15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행사는 자정 결의 다짐, 직원 헌혈 봉사, 각 국·소속기관 봉사활동 등으로 이루어졌다. 자정 결의 다짐은 청렴서약서 낭독과 서명식으로 진행됐다. 최근 숭례문 복구 등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한 자정 결의를 다짐함으로써 문화재청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행사였다.

문화재청은 1945년 11월 8일 미군청정 관할 하의 황실사무청으로 문화재관리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1955년 6월 8일 황실재산사무총국으로 개편됐다가 1961년 10월 2일 문교부 외국(外局)으로 문화재관리국이 설치돼 업무를 이어갔다. 그러다 1999년 5월 24일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문화재청으로 승격했다. 2004년 3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차관청으로 승격했다.

한때 최고의 인기부처로 우리 문화재를 전승·보전한다는 자긍심이 높았다. 그러나 국보 1호 숭례문 화재와 부실 복원으로 신뢰도가 떨어졌다. 지난 15일 감사원이 발표한 ‘문화재 보수 및 관리 실태’를 보면 문화재청의 청렴도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드러났다. 숭례문 부실공사와 경북 경주 첨성대의 기울기를 방치해온 사실 등이 지적됐다.

숭례문의 경우 문화재청이 2009년 12월 민간업체 두 곳과 복구공사 계약을 하고 공사를 진행하면서 애초 정한 공사기한(5년)에 맞추려다 곳곳에서 부실시공을 했다. 특히 단청은 전통방식인 아교 등에 대해 시공기술과 경험이 없는 단청장의 명성만 믿고 검증되지 않은 다른 기법을 적용했다. 단청장은 값싼 화학접착제를 사용하면서 3억원의 부당이익까지 챙겼다. 숭례문 지반을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문화재청은 제대로 된 고증이나 자문 없이 공사를 진행했다. 숭례문과 주변 계단부분이 복구 기준시점인 조선 중·후기 지반보다 최고 145㎝ 높아지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와도 업체로부터 시공이 번거롭다는 의견을 받고는 KS규격으로 변경, 화재 이전의 모양과 크기가 크게 달라졌다. 감사원은 복구단장 등 5명에 대해 징계를 요구했다.

첨성대(국보 제31호)는 지반침하로 해마다 1㎜ 정도씩 기우는 것이 2009년 확인됐으나 지반상태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겸재 정선 화첩’ 등 외국으로부터 돌려받거나 발굴된 중요 문화재들이 국가의 관리 없이 방치된 사실도 적발됐다. 발굴 문화재 711점이 최대 49년간 국가에 귀속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원전급 비리’ 정도는 아니어서 문화재청 직원들 가운데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지적사항들을 보면 문화재청의 자정 결의는 한참 늦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귀중한 문화재의 보존·관리에는 조금의 공백이나 차질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정 결의를 했다고 해서 전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 뼈를 깎는 자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감사원이 지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전문가 의견을 듣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 선정도 공명정대하게 이뤄져야 한다. 할 일이 태산처럼 많은 문화재청이 소중한 문화재를 가꾸고 후손에 전하는 주역이라는 자긍심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