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VIP 병실
입력 2014-05-24 02:42
2013년 8월 26일 오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급히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왔다. 혈압이 갑자기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병원 측은 일단 입원토록 한 다음 정밀 검진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일반 병동의 VIP 병실이 아닌 암병동 특실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예우상 당연히 VIP 병실을 제공해야 했으나 4개의 병실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김영삼 전 대통령,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 등이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병원 측은 곤혹스러웠으나 방도가 없었다. 전직 대통령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는 곳, 바로 VIP 병실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김성주 의원(당시 민주당)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전국 41개 대형병원에 430개의 VIP 병실이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61개로 가장 많다. VIP 병실의 하루 입원비는 50여만원에서 200만원 정도다. 병실의 규모, 시설, 전망, 보안성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전용 엘리베이터, 가벼운 조리시설, 별도의 컨시어지 서비스 등을 갖췄다. 한강이나 남산 조망권을 지닌 곳도 있다. 병원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보안 문제다.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정치인, 재계 인사, 연예인 등이 주 환자인 만큼 각별할 수밖에 없다.
VIP 병실을 보는 눈이 곱지만은 않다. 간혹 권력자나 재력가들의 도피처로 악용되거나 높은 입원비가 박탈감을 주기도 한다. 보건당국과 병원들이 VIP 병실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꺼리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19일 저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 삼성은 “모든 검사 결과가 안정적이고 상태가 많이 호전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옮겨진 곳은 본관 20층의 VVIP 병실이다. 호텔로 치면 ‘로열 스위트’다. 보안성, 의료장비, 편의성 등이 국내 의료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삼성서울병원의 의료기술과 삼성그룹의 역량이 집결된 곳이기도 하다. 이 회장 치료에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이 회장의 VVIP 병실 이동으로 이런저런 루머도 사라지게 됐다. 병원 관계자는 “앞으로는 개별 치료 과정 등은 당분간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엉뚱한 소문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198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