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융지주제가 문제라면 제도부터 뜯어고쳐야
입력 2014-05-24 02:31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KB금융의 내분은 보기에 민망하다. 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 간의 알력다툼에서 비롯된 문제에 금융감독원까지 끌어들였으니 자산 387조원의 국내 최대 금융회사라는 타이틀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국민은행은 23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상임감사가 이의를 제기한 전산 시스템 교체 의혹을 살펴봤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 달 전의 의결사항을 하자 있다고 뒤집기도, 그렇다고 리베이트 의혹이 제기되고 금융 당국이 특별검사까지 나선 마당에 그냥 덮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잦은 금융사고와 개인정보 유출에 이어 내홍까지 겹쳤으니 경영진은 노조의 사퇴요구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사이의 권력다툼은 비단 KB금융만은 아니다. 대부분 금융그룹에서 은행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회장 못지않게 은행장의 권한이 막강한 데다 출신 배경이 다른 낙하산 회장과 행장이 선임되면서 반목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지주회사 체제는 2001년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금융서비스 간의 칸막이를 없애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금융기관의 대형화를 촉진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지주사와 은행이 각각 이사회를 두고 있어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지주사가 ‘옥상옥’ 역할을 하고 있어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KB금융의 경우도 전산 시스템 교체 결정은 국민은행 이사회가 했지만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외이사 선임에는 지분을 100% 갖고 있는 지주회사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낙하산 인사들이 포진한 허약한 지배구조다. KB금융은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민간 금융회사지만 지주회사 회장은 재정경제부 2차관 출신이 내려왔고, 은행장은 금융연구원 출신이 입성했다. 관치 낙하산 인사들이 수십억원 연봉을 받으며 거쳐가는 동안 금융회사는 곪을 대로 곪아버렸다.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개선하고 투명한 CEO 승계 시스템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