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14) 세상에서 가장 환한 웃음-코스타리카에서

입력 2014-05-24 02:04


비는 멈출 줄 몰랐다. 코스타리카로 넘어온 이래 하루도 빼지 않고 나는 우중 라이딩을 해오고 있었다.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된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막기 위해 우비를 입었다. 고역이었다. 체온으로 인해 우비 속 습도가 높아졌다. 온 몸이 다 젖었다. 냄새마저 고약했다. 비를 피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도로 주변엔 죄다 숲이었다. 그나마 넓은 입을 가진 나무도 없었다.

비 맞은 생쥐 꼴로 한참을 달렸다. 드디어 지붕 있는 곳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흙밭에서 왁자지껄 장난치고 있었다. 아니다. 자세히 보니 비가 오는 가운데서 밭일을 하고 있었다. 농부는 허투루 보내는 날이 없나 보다. 비가 올 때는 거기에 맞게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었다. 삼형제였다. 형으로 보이는 큰 두 아이가 작은 수레를 이용해 거름을 나르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다니. 곧 아이들의 부모와 누나가 나왔다.

“따뜻한 차 한잔 드릴까요?”

이들은 나를 지붕 아래 마루로 안내해 쉬게 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게 찻잔을 내밀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차 한 모금 마시니 잠시나마 쌀쌀함을 잊을 수 있었다. 마침 점심때였다. 적당한 곳에서 허기를 때울 생각이었다. 가방 속에는 비상시에 먹을 빵이 있었다. 하지만 과묵한 표정의 남자는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아이들과 같이 점심 드세요. 금방 차려 나올게요.”

아이들은 쑥스러운지 그냥 눈치 보며 웃었다. 자신들을 미구엘 형제라고 소개했다. 큰형 이름을 딴 것이다.

“쉬는 날에는 이렇게 집안일을 도와요.”

의젓한 첫째가 흙 묻은 장화를 털며 말했다. 곧 어머니가 소박한 상차림을 들고 나왔다. 빵과 비스킷, 그리고 밀크티가 놓여 있었다. 단출했다. 막내 여동생을 품에 안은 누나도 점심을 들기 위해 함께 둘러앉았다. 아버지는 누나에게서 딸을 건네 안아 살살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서 챙긴 우유를 입에 넣어주었다. 남자 아이들은 늦둥이 막내 여동생이 신기한지 연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첫째와 17년이나 차이 나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가족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반전이 있었다. 별 표정 없던 그가 어린 딸을 얼레는 얼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남자가 되어 있었다. 어쩜 그렇게 상냥하고 애교가 많은지. 처음 과묵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딸을 가진 세상의 아버지 모습 그대로였다. 눈에서 하트가 뿅뿅 발사되고 있었다. 아무리 험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모두 막아줄 것 같은 그런 듬직한 품이었다. 아들들은 신이 났다. 손님 앞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생경스러우면서도 재밌었나 보다.

나는 함께 식사를 하면서 한 아이 때문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아니 한 가족 안에 이렇게 환한 웃음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감사했다. 언젠가 내가 꿈꾸던 가정의 모형을 이곳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 잃어버린 어린 양이 더 소중하다는 말씀, 성경의 원리는 이미 세상의 모든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어둔 사랑의 모습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공동체, ‘가족’이다. 예수님 모습을 닮은 내 부모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