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남겨진 것

입력 2014-05-24 02:26

19세기의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그림이 있다. 불안해 보이는 둥근 지구 위에 한 소녀가 겨우 몸을 추스르듯 맨발로 앉아 있다. 그녀의 눈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그녀가 안고 있는 수금은 사슬에 묶여있다. 수금의 현은 하나만 남겨져 있고 모두 끊어져 있다. 그래도 그녀는 남겨진 하나의 현으로 수금을 연주하고 있다. 이 그림은 마치 절망을 묘사한 듯 음울하고 처절하다. 그러나 화가는 이 그림의 제목을 ‘희망’이라고 붙였다. 희망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위태로운 모습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절망 가운데 남겨진 하나의 현으로 존재한다.

희망은 충족된 삶에 있지 않고 절망의 자리에서만 존재 가치가 있다. 우리는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집착하며 절망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언가 남겨진 것이 있다. 이제 그 남겨진 것을 찾아 삶을 연주해야 하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붙잡은 사람들의 특징은 남겨진 하나를 찾아낸 사람들이다.

사고로 몸의 기능을 잃고 반신불수가 된 사람이 찾아낸 남겨진 것은 자신의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이었다. 그는 생각할 수 있는 그것으로 글을 써서 작가가 되었다. 파산으로 재산을 모두 잃은 사람이 자신에게 남겨진 것들을 공책에 적기 시작했다. ‘아내 아이들 친구 건강…’ 그리고 많은 것들이 남겨진 것을 발견하고 새 힘을 얻었다.

청중 앞에서 연주를 하던 바이올리니스트의 바이올린 현이 하나 끊어져 버렸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계속 연주했다. ‘줄 하나만 끊겼을 뿐이다’ 두 번째 줄도 끊어졌다. ‘반이나 남았다’ 그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줄까지 끊어졌다. 청중은 숨을 죽였고 그의 불운에 ‘아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한꺼번에 오는 불행은 우리를 절망케 한다. 남겨진 하나의 현은 쓸모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까지 자신의 손으로 끊어버린다. 그러나 세 개의 줄이 끊긴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자는 ‘줄 하나와 하나님’ 하고 소리쳤고 한 줄로 남은 희망을 붙잡고 하나님과 함께 연주했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