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총리 안대희 내정]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 막고 ‘책임총리제’ 이뤄낼까
입력 2014-05-23 03:52
차기 총리에 지명되자마자 결연한 각오를 내보인 안대희 총리 내정자가 명실상부한 ‘책임총리’가 될 수 있을지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책임총리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 사항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안 내정자가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시절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성안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을 ‘삼고초려’ 끝에 정치권으로 등용한 당시 대선후보 박 대통령에게 내민 ‘회심의 정치쇄신 카드’가 이제 바로 본인에게 돌아온 셈이다.
안 내정자는 이미 내정 소감을 통해 책임총리가 되겠다는 강한 의지를 과시했다. 그는 “평생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살아왔다”며 대통령에게 직언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소신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그냥 ‘물에 물탄 듯’했던 기존 총리들과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단행될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장관급인 신설 국가안전처와 행정혁신처를 흡수하는 역대 가장 강력한 위상을 부여받는 점도 안 내정자에게 힘이 실리는 이유 중 하나다. 만약 안 내정자가 이번 사고 수습 과정에서 ‘맨 얼굴’을 드러낸 정부의 총체적 무능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혁신한다면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책임총리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책임총리란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총리로,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현행 대통령제의 단점을 고치기 위한 방책이다. 원론적으론 헌법에 보장돼 있지만 역대 총리들은 충분히 힘을 갖지 못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특히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은 사실상 사문화돼 있었다.
안 내정자는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당시 헌법에 명시된 이 제청권의 실질적 보장, 장관의 부처 및 산하기관 인사권 보장을 통한 책임장관제 실시 등을 골자로 쇄신안을 만들었고, 박 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막상 집권한 뒤 이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다. ‘만기친람(萬機親覽)’ ‘수첩인사’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박 대통령이 국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다보니 정홍원 총리는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의전 총리’ ‘대독 총리’ 역할에만 그쳤다는 것이다.
이처럼 총리 역할이 미미하다보니 강하게 정책 드라이브를 걸 추진력도 없었으며, 결국 세월호 참사에서 이런 문제점이 고스란히 외부로 노출됐다. 정 총리는 사고 수습과정에서 실종자 및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들의 불신을 키웠고, 다른 부처에 대한 리더십도 보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두루두루 순조로운 게 우선이라는 소신을 가진 정 총리와 달리 안 내정자는 자신의 소신이 옳다고 판단하면 불도저처럼 뚝심 있게 이를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따라서 내정자 꼬리표를 떼고 정식 총리로 취임하면 곧바로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할 개연성도 있다.
안 내정자는 지난 대선 당시 자신이 만들었던 다른 정치쇄신안 실천에도 나설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감찰관제 도입과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를 위한 상설특검제 도입,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의 정책간담회 정례화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당시의 방안들이 박 대통령이 천명한 ‘국가 대개조’ 메시지와 배치되지 않는다.
때문에 박 대통령과 안 내정자가 국정 현안을 놓고 미묘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두 사람 모두 카리스마가 강하고 주도면밀한 성격인 만큼 부딪힐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는 노무현정부 시절 이해찬 전 총리가 책임총리제에 가장 근접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재임 중 19년간 미결 과제로 남아있던 원전폐기물처리장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공공기관 지방이전안을 발의해 추진하는 등 비교적 주도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김종필 전 총리는 연립정권(DJP연합)의 지분을 가진 덕에 국민연금 파동 등 굵직한 국정 현안들을 적극적으로 중재하며 국정 2인자로서 힘을 발휘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힘 있는 총리로 꼽혔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