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골든타임은 놓쳤지만
입력 2014-05-23 02:09
“이류 장관들 앉혀놓고 대장노릇 하지 말고 일류 장관들에게 권한과 책임 줘라”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존 F 케네디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최연소 교수 출신이자 포드 자동차 사장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를 국방부 장관에 앉히려 했다. 케네디가 맥나마라를 인터뷰하기 위해 불렀다. 그런데 정작 맥나마라는 케네디에게 역으로 물었다. 1957년 퓰리처상을 받은 ‘용기 있는 사람들’을 케네디 본인이 실제 썼는지, 누가 대필해준 것은 아닌지. 침묵하고 있던 케네디는 본인이 직접 썼다고 답했다. 1시간가량 케네디에게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던 맥나마라는 케네디에게 “이제 당신이 질문하라”며 바통을 넘겼다. 케네디는 그만 나가도 좋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맥나마라는 수행원에게 “잘렸다”고 했지만 케네디는 그를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맥나마라는 1961년부터 1968년까지 케네디와 린든 존슨 행정부에서 7년간 국방장관을 지내 최장수 국방장관 기록을 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 총리를 내정한데 이어 조만간 개각을 단행할 것이라고 한다. 1기 내각은 실패한 내각이다. 대통령 입만 바라보는 장관들은 가라앉는 세월호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2기 내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선거 때문이 아니더라도 흠결 있는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들을 그대로 끌고 갈 수는 없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직간접적으로 책임 있는 장관들은 물론이고 청와대 참모진도 책임이 작지 않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책임회피에 급급했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말썽 많았던 국정원장을 경질한 것으론 부족하다.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청와대 비서실장과 KBS 보도개입 논란의 중심에 선 홍보수석도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 옆에서 컵라면 먹으며 염장지른 교육부 장관도 바꿔야 한다. 수장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경제부총리를 비롯, 분에 넘치는 옷을 입은 장관들도 물갈이해야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 게 맞다.
박근혜정부 1년 반을 돌아보면 한 일이 없다.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부적격 총리 후보나 장관 후보들이 줄줄이 청문회 벽을 넘지 못하고 정부 조직 개편이 늦어지면서 출범부터 삐걱거렸다. 정부 조직이 꾸려진 뒤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1년을 허비했다. 복지공약 후퇴와 낙하산 인사로 시끄러웠던 것 외에 별 기억이 없다면 지나친 말일까.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 받지 않고 야당과의 허니문을 즐기면서 맘 놓고 정책을 펼 수 있는 ‘골든타임’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3년 반이란 시간이 남아 있다. 할 일은 산더미다. 우선은 박 대통령의 말대로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적폐(積弊)를 도려내고 국가개조를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호’를 만드는 일이 급하다. 관피아(관료+마피아)와의 전쟁은 쉽지 않을 거다. 우리나라의 경우 ‘권불오년(權不五年)’이지만 공무원은 평생을 한다. 역대 정부마다 공직사회 개혁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게 속고도 개혁의 칼자루를 또 공무원에게 맡기겠다고 하니 안타깝다. 민간 집도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셀프 개혁’ 실패는 국정원으로 족하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공공기관 개혁도 속도를 내야 한다. 안전에 대한 규제는 강화해야겠지만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기업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는 규제 혁파도 계속 추진해야 한다. 반짝 살아나는 듯했던 경기가 세월호 참사 이후 급격히 가라앉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데 이 정부에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중진국 함정에 빠질는지 모른다.
이런 모든 일을 대통령 혼자서 다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받아쓰기만 하는 이류 장관들 앉혀놓고 대장노릇 하려 하지 말고 일류 장관들을 뽑아 권한을 넘겨주고 책임지도록 해라. 대통령 앞에서도 쓴소리 할 줄 아는 장관을 골라라. “훌륭한 리더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이 아닌,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을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사람이다”는 존 맥스웰의 말은 지금 박 대통령에게 딱 필요한 경구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