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기업, 사퇴 않고 출마… 낙선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현직 복귀

입력 2014-05-23 02:38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 김모씨는 2006년과 2010년 두 차례 자신이 근무하는 충북 지역에서 군의회 의원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낙선할 때마다 곧바로 공단에 복귀할 수 있었다. 김씨처럼 공기업·준정부기관 직원 중 현직을 유지한 채 선거에 출마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공기업 대부분이 유급휴가나 휴직 상태에서 출마한 뒤 떨어져도 복직할 수 있도록 내부 규정을 두고 있어 ‘철밥통’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6·4지방선거 후보자 명단에 따르면 건보공단 직원 5명을 포함해 공기업·준정부기관 직원 13명이 현직을 유지한 채 출마했다.

건보공단의 경우 부산에서 직원 2명이 각각 구청장과 시의원 후보로 등록했다. 강원도에선 2명이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고, 전남에서도 1명이 군의원 후보로 등록했다. 자문위원 등을 포함하면 후보로 등록한 건보공단 관계자는 12명으로 늘어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원 2명은 각각 부산과 전남 여수에서 구청장과 시의원 후보로 등록했고, 용인도시공사 직원 2명도 도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국민연금공단과 부산교통공사 직원은 부산에서 각각 시의원 후보로, 한국수자원공사와 수원시설관리공단 직원은 각각 대전과 수원에서 기초의원 후보로 등록했다. 후보자 직업 및 경력란에 ‘회사원’ ‘정당원’ 등으로 기입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 출마한 공기업 직원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무원은 선거 90일 이전 사퇴해야 후보 등록이 가능하다. 정부 지분 50% 이상인 기관과 농협 등의 상근 임원도 마찬가지다. 반면 임원이 아닌 공기업 직원은 휴직·휴가를 얻어 출마해도 이를 제지하거나 징계할 법적 근거가 없다. 건보공단, 국민연금공단 등의 내부 인사 규정이 이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출마한 국민연금공단 직원은 다음달 3일까지 유급휴가를 신청했으며, 도의원에 출사표를 던진 용인도시공사 직원은 유급휴가를 사용하다 정당 공천이 확정되자 최근 휴직했다.

하지만 공기업 직원이 사퇴하지 않고 출마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국정감사 때마다 제기돼 왔다. 특히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상근 임직원의 선거운동이 가능해진 2006년 이후 이번 선거까지 30명 가까운 직원이 출마한 건보공단은 늘 논란의 중심이었다. 국민의 민감한 신상 정보를 보유한 건보공단 직원들이 현직을 유지한 채 출마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지방 근무자들은 직급이 낮아도 지역에선 인지도가 높아 출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휴가를 내거나 휴직하고 출마하는 것은 법이나 내부 규정에 전혀 위배되지 않아 문제 소지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의정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헌신하겠다고 나선 후보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선출직 공무원에 출마하는 후보자가 퇴로를 마련해놓고 후보에 등록하는 사례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이나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낙선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복직하는 공기업 직원들의 행태는 옳지 않다”며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사 직원들도 공무원 수준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장희 기자, 세종=이용상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