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러와 미·일 틈바구니에서 한반도 지키려면
입력 2014-05-23 02:41
중국과 러시아가 새 동아시아 질서 구축에 나섰다. 상하이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일 정상회담 뒤 5600자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말이 공동성명이지 사실상 동맹선언이다. 성명에는 동북아의 새로운 역내 질서 탄생을 알리는 내용도 들어 있다. 두 나라가 한반도를 위시한 동아시아에서 미·일동맹에 맞서겠다는 포고(布告)에 다름 아니다.
두 나라의 밀월은 무려 4000억 달러(약 410조원) 규모의 러시아산 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경제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군사 분야로까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한국방공식별구역이 포함된 동중국해에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러시아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그간 대중 수출을 꺼렸던 최첨단 Su(수호기)-35S 전투기 판매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중·러 공조는 국익을 위해서는 ‘적의 적은 우리 편’이라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중국으로선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고 있는 미국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대러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혼자서는 힘든 공동의 적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문제는 두 나라의 팽창정책이 동아시아 질서를 해치고 안정을 위협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간접피해를 경험했다.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석유 시추는 이 지역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고, 베트남의 격렬한 반중시위는 현지 진출 한국 기업에 적잖은 피해를 입혔다. 지난 21일에는 러시아 해상초계기 IL-38 두 대가 동해 방공식별구역을 1시간가량 침범했다가 퇴각하는 등 현 동아시아 정세를 안정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미·일 대 중·러 대결 구도의 한복판에 서 있다. 두 축이 충돌할 경우 최대 피해를 입는 곳이 한반도다. 한반도 정세의 가장 큰 외부 변수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중 관계를 중재할 수 있는 우리의 외교력은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두 나라에 ‘기다’ ‘아니다’ 우리의 의사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중·러 공조에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나라가 전후 국제질서 변경을 시도하려는 일본에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은 우경화에 제동을 거는 효과가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한·미 간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미·중 어느 한쪽에 치우친 편향외교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기대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