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한장희] 관피아 개혁 ‘셀프’론 어림없다
입력 2014-05-23 02:24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유병언 일가의 탐욕, 얽히고설킨 ‘관피아’의 유착 관계. 세월호 참사 원인은 크게 이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관피아에 대해 “관료사회의 적폐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들어낼 것”이라며 칼을 빼들었다.
부처와 산하기관, 이익단체 간의 유착 관계를 끊자면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기대를 접은 사람들이 많다. 공직사회 개혁이 구호로만 그쳤던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게 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꼽히는 게 수십 년간 공고해진 관료들의 노련함이다. 개혁 시도 때마다 관료들은 개혁에 부담을 느끼는 외부 세력과 연대해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개혁 과정의 잡음은 정권의 미숙함으로 교묘하게 포장했다. 그러다가 정권이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면 곧 충성스러운 신하로 돌변했다. 누구보다 빨리 대책을 준비하고, 묵묵히 정권을 위해 일하는 모습으로 ‘공무원만한 전문가는 없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서슬 퍼런 정권을 관료는 대개 이런 방식으로 길들여 왔고, 그래서 번번이 역대 정권의 공직사회 개혁은 실패로 마무리됐다.
관료사회의 무사안일 역시 들어내기 쉽지 않은 적폐다. 정권이 공직 개혁에 착수하면 ‘눈 딱 감고 몇 년 버티자’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많다. 그 밑바닥엔 ‘관료제가 도입된 진시황 이래 한번도 최고 권력자가 관료사회를 이긴 적이 없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다. 또 국민들이 공직자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함에도 정작 대개의 공무원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공무원이 개혁에 동참하지 않고,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제도적 보완만으로 된 개혁이 가져올 결과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집요함과 줄서기 문화도 개혁의 걸림돌이다. 국장까지만 올라가면 연봉 수억원인 ‘미래의 직장’ 산하기관과 민간기업 임원자리가 보장된다는 생각에 관료들은 정치권과 청와대를 기웃거린다. 정권 초 줄을 잘 대 5년 만에 과장에서 1급까지 초고속 승진했다는 일화들이 관료들의 잘못된 믿음을 더 굳게 했다. 소망대로 낙하산을 타고 산하기관으로 내려간 관료들은 ‘내 임기 때만 조용히 넘어가자’는 생각에 적당히 노조와 타협했고, 그 결과 적자투성이 공기업은 신의 직장으로 변해 왔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사회의 민낯이 뚜렷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개혁의 칼자루를 관료조직에 쥐여 주었다.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안전행정부에 공무원 개혁의 밑그림을 짜도록 한 것이다. 벌써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들린다. 간첩 조작 의혹 사건으로 조직의 치부를 드러냈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며 국정원에 ‘셀프 개혁’ 지시를 내린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정권 출범 후 박 대통령은 내각과 청와대 인사의 70% 이상을 관료로 채웠다. 선거 보은인사 논란을 의식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수장에 관료 출신을 임명하는 데 주저하지 않은 것을 보면 대통령의 관료조직에 대한 신뢰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박 대통령이 기존 관료조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지 모를 일이다. 다만 관료들의 노련함과 집요함에 결국 이번 공직사회 개혁도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한장희 경제부 차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