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큰 기업 품은 작은 도시… 비법은 ‘라이프스타일’

입력 2014-05-23 02:10


작은 도시 큰 기업/모종린/RHK

“부산 같은 도시를 위해서 이 책을 썼습니다.”

나이키 스타벅스 이케아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잉태한 작은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이 책을 쓴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한국 도시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22일 이렇게 말했다.

“수백만 인구에 세계적인 하드웨어를 가진 도시가 왜 글로벌 기업 하나 키우지 못했을까요. 제2의 강남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부산만의 문화, 부산만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찾아야합니다.”

한 때 부산의 중심산업이었던 신발. 그 신발로 세계를 재패한 기업 나이키는 미국 서북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서 탄생했다. 부산의 신발회사들이 외국기업의 하청업체였듯이, 나이키도 초기에는 일본 신발을 수입해 팔았다. 그런 나이키가 글로벌 스포츠용품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포틀랜드라는 도시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진단한다.

포틀랜드에 붙는 타이틀은 ‘미국에서 가장 푸른 도시’다. 라이프스타일의 키워드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활기찬 아웃도어 활동이다. 미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이고, 자전거를 즐기기에도 가장 좋은 도시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비율이 7%에 이른다. 포틀랜드는 2030년까지 이 비율을 3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나이키가 강조하는 ‘스포츠는 곧 일상’이라는 콘셉트가 바로 포틀랜드의 콘셉트이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이런 환경을 지키는 일에도 철저하다. 포틀랜드가 소속된 오리건주의 재활용 비율은 63%가 넘는다. 나이키도 재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불필요한 유기화합물 소비를 줄이는데 신경을 쓴다. 제품뿐만이 아니라 나이키가 소유한 시설의 건축과 관리에도 지속가능성의 원칙을 적용한다. 나이키 본사 일대에는 푸른 숲에 둘러싸인 조깅 트랙이 꾸며져 있다. 조깅하는 사람을 형상화한 동상이 트랙 한 켠을 지키고 있다.

포틀랜드는 자유롭고 개성이 넘치는 도시다. 포틀랜드의 도심에서는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유통업체를 찾기 어렵다. 대신 파월서점 등 전국적으로 유명한 독립 가게들이 도심을 차지하고 있다. 시 정부는 오랫동안 월마트의 확장을 막았다. 시민들도 독립 가게들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 보자. 해운대 동백섬에는 초고층 빌딩이 마천루를 이루고 있다. 센텀시티와 광안대교는 부산이 서울 못지않게 화려하고 현대적인 도시임을 과시한다. 하지만 해운대를 벗어나면 부산은 다른 도시다. 한국 전쟁 이후 도시의 규모는 커졌으나 확장된 상태에서 낡아버렸다. 개방성과 현대성, 젊음이라는 특징을 새로운 문화로 만들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모 교수의 진단대로 해운대만 강남을 쫓아갈 뿐이다.

한국의 다른 도시들은 어떨까. 이 책은 말미에 세종시를 언급한다. 행정수도로 기획돼 처음부터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모 교수는 세종시를 호주의 행정수도 캔버라와 비교했다. 캔버라에 근무하는 젊은이들도 주말이면 3∼4시간씩 운전해서 시드니로 간다. 무미건조한 공무원의 도시로 머물러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캔버라는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캔버라의 벤치마킹 대상은 미국 오스틴이다. 오스틴은 미국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텍사스의 수도다.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에서 각각 3000㎞ 이상 떨어진 내륙이다. 텍사스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레드 스테이트’를 대표할 정도로 보수적인 곳이다. 오스틴은 그러나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유기농식품체인인 홀푸드마켓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 눈앞에 보이는 이윤보다 고객의 건강과 사회 환경을 우선시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이 사랑하는 기업이다.

오스틴은 모래바람이 부는 미국 땅 한가운데 인공으로 호수를 만들고 주정부와 대학을 유치해 만든 도시다. 다른 지역 출신과 젊은 사람들이 많다. 문화적으로도 진보적이고 격식이 없다. 대안 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들을 위한 가게가 탄생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스타벅스의 고향 시애틀의 커피 문화, 이케아의 고향 스웨덴 알름훌트의 검소함, 교세라 본사가 있는 교토의 사색과 철학의 전통 등 글로벌 기업을 키운 작은 도시 10곳의 특징을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모 교수는 이 도시들의 특징을 개방성, 개성적인 라이프스타일, 세계화, 기업가 정신 4가지로 요약했다. 한국의 도시에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