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 ‘커플 놀이’ 위험천만

입력 2014-05-22 02:26 수정 2014-05-22 15:47


“우리도 이거 한번 해볼래?”

지난달 말 부산 A여고 1학년 주희(가명·17)는 같은 반 친구 민서(가명·17)에게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동영상에는 SNS상으로 유행하던 커플 간의 ‘돌려 안기’ 자세가 담겨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마주선 뒤 여자가 허리를 앞으로 굽혀 다리 사이로 양손을 밖으로 빼면, 남자가 이를 바깥쪽에서 잡아 그대로 들어올리는 동작이다. 여자가 앞으로 한바퀴 굴러 남자의 허리 위로 안기는 ‘서커스’ 같은 동작이라 성인들도 따라하기 어렵다.

민서는 “지금 연습했다가 나중에 남자친구가 생기면 같이 해보자”며 책상을 한쪽으로 밀어넣고 자세를 잡았다. 다른 친구들도 “재미있겠다”며 주위로 몰려들었다. 민서는 ‘하나, 둘, 셋’을 외치며 주희의 손을 잡고 들어올렸지만, 주희의 체중을 버티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곧장 병원으로 옮겨진 민서는 경추를 다쳐 한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SNS 열풍을 타고 외국 성인들의 ‘커플 놀이’를 따라하다 부상당하는 중고생들이 늘고 있다. ‘커플 놀이’란 주로 외국의 성인들이 연인 간 ‘기형적’인 자세를 연출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것을 말한다. ‘돌려 안기’를 비롯해 무릎 꿇은 여자친구를 두 팔로만 안아 들어올리거나 물구나무선 남자 아래 여자가 누워 키스하는 식의 자세 등이다. 연인 사이에 ‘특별한’ 사진을 남기려는 욕구를 자극하다 보니 최근 SNS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를 근력이 약한 학생들이 무심코 따라하다 다치는 경우가 늘면서 학교가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의 B고등학교 2학년인 재하(가명·18)도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무릎 꿇은 같은 고교생 여자친구를 두 팔로 들어올리다 여자친구를 놓치고 말았다. 머리를 땅에 부딪친 여자친구는 넘어진 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큰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부산의 한 여중에서는 최근 “커플 자세 놀이를 따라하다 목에 깁스를 하거나 머리를 다친 학생들도 있다”며 커플 놀이를 금지하는 공지문까지 배포했다. 처음에는 “커플 놀이는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만 합시다!”라며 다소 ‘재치’있는 경고문도 넣었지만, 이성 간에도 다칠 위험이 있다는 판단에 해당 문구도 삭제했다. 학교 생활지도부장인 김모 교사는 21일 “학교 내에서 커플 돌려 안기 자세를 취하다 벌써 2명이 다쳤다”며 “집이나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생길 수 있는 만큼 학생들 안전 차원에서 주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 시기에는 모방심리와 영웅심리가 가장 활발히 작용하는 시기여서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안전한 놀이문화를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