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 작업복’ 입은 채 퇴근 지자체 청소원들 여전한 비애

입력 2014-05-22 02:04


서울 모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김석봉(가명·58)씨는 퇴근길이 항상 찜찜하다. 근무 도중 온갖 쓰레기를 치우느라 더러워진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퇴근하는 일이 많은데, 김씨의 작업장에는 샤워시설이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면 화장실로 직행해 샤워를 하지만 혹시나 몹쓸 병균이 묻어 들어와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21일 전국 지방자치단체 47곳의 청소 업무 담당 조직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목욕시설이 없는 곳이 30%였다고 밝혔다. 목욕시설이 있는 곳 중에도 30%는 온수가 나오지 않아 겨울철에는 절반 이상이 목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근로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 세면·목욕시설, 탈의·세탁시설을 설치하고 필요한 용품과 용구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대상 업무는 환경미화, 음식물쓰레기·분뇨 등 오물의 수거·처리, 폐기물·재활용품 선별·처리 등이다.

2010년부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진행된 ‘청소 근로자의 씻을 권리를 보장하라’는 캠페인이 결실을 맺어 2012년 법령이 개정된 것이다.

2010년 민주노총은 청소 근로자 1050명을 조사한 결과 77%가 샤워를 못하고 67%가 일하던 작업복을 그대로 입은 채 퇴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조사에선 10㎠당 환경미화원 바지에는 9만1700개, 소매 13만3600개, 어깨 2400개, 배 3만1800개, 얼굴에 719개의 박테리아가 발견됐다.

법령은 개정됐지만 업무를 마친 뒤 각종 유해 미생물에 오염된 작업복을 갈아입지도, 몸을 씻지도 못한 채 퇴근하는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목욕시설이 있는 경우에도 1인당 제공되는 면적은 0.5㎡(0.15평)에 불과했고 샤워기도 10명당 1.7개꼴로 한참을 기다려야 씻을 수 있는 상황이다. 세탁시설이 제공되는 곳은 절반에 불과했고 세탁시설이 있어도 건조할 곳이 없는 경우가 50%로 나타났다. 전체 사업장의 75%에서 세탁이 불완전하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위생시설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30%는 시설부족 때문에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너무 멀거나 관리자 눈치가 보여서 이용할 수 없다는 곳도 각각 3%다.

조사대상 청소 업무 조직의 15%는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휴게시설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61.4%는 세탁된 작업복과 세탁되지 않은 작업복을 구분해 넣을 수 있는 개인 물품함이 제공되지 않아 오염을 부추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 의원은 “청소 근로자들이 대부분 간접고용 형태라 실질적 사용자가 책임을 지지 않고, 제공된 시설도 부적절하다”며 “청소 근로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법령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지자체와 고용노동부가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