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새겨진 문화와 민족 코드 (3) 아르헨티나] 이주민 후손들… 승리 위해선 ‘물·불’ 안가린다
입력 2014-05-22 03:31
아르헨티나라는 국명은 라틴어 ‘아르겐툼(Argentum)’에서 유래했다. 아르겐툼은 은(銀)을 뜻한다. 스페인이 신대륙 시절 아르헨티나로 진출했을 때 스페인 사람들은 이 지역에 은이 넘친다고 믿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남부 유럽에서 몰려온 이주민들의 후손이 현재의 아르헨티나 국민이다. 아르헨티나인들은 다른 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혼혈 인종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도 백인 일색이다.
신대륙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국가답게 아르헨티나 축구는 모험적이고 터프하다. 승리 지상주의가 몸에 밴 때문인지 아르헨티나 축구의 모토는 이렇다. “골은 골대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루이스 메노티 아르헨티나 전 감독).”
◇‘희고 푸른 자들’의 거친 축구=아르헨티나 축구는 일반적인 남미 스타일과 조금 다르다. 브라질 선수들은 속임수로 선수들을 제친다. 반면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양 팔로 상대 수비수들을 뿌리치며 제친다.
아르헨티나의 기후는 브라질보다 시원해 선수들은 왕성한 활동이 가능하다. 공을 잡고 많이 움직일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드리블 실력이 좋아진다. 리오넬 메시(27·FC 바르셀로나)가 폭발적인 드리블을 뽐내는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드리블을 정상적인 플레이로 막긴 어렵다. 반칙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 축구가 격렬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흔히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탱고 군단’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선 ‘알비셀레스테스(Albicelestes)’라고 불린다. ‘희고 푸른 자들’이란 뜻인데, 하늘색과 흰색을 쓰고 있는 아르헨티나 국기와 대표팀 유니폼을 가리키는 용어다.
아르헨티나 축구는 군사독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1929년 아르헨티나 최초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독재 세력은 우민화정책을 위해 남미에서 가장 먼저 프로축구를 출범시켰다.
이후 축구는 아르헨티나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다. 1976년 아르헨티나에 또 쿠데타가 일어나 호르헤 비델라가 대통령이 취임했다. 계엄령이 선언되고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극에 달하자 비델라 정부는 축구를 돌파구로 삼았다.
◇축구, 아르헨티나의 유일한 희망=아르헨티나는 1978년 월드컵을 유치해 심판들을 매수했다는 의혹 속에 우승을 차지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독재정권의 ‘장난’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자국의 우승에 열광했다. 지쳐 있었던 그들에겐 ‘거짓의 희망’이라도 필요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1978년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다른 출전국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에서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본 후 세계 축구에서 강호로 군림하게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승컵을 거머쥔 뒤 정말 강해진 것은 ‘아르헨티나 축구의 역설’이다.
아르헨티나 축구의 특징을 보여 준 장면은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나왔다. 그해 6월 22일 멕시코시티의 아즈테카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8강전. 포클랜드 전쟁의 당사자들인 양 국은 그야말로 전쟁 같은 경기를 치렀다. 0-0으로 접전을 펼치던 후반 6분 1m65의 단신인 마라도나가 잉글랜드 문전에서 헤딩하던 순간 왼쪽 주먹을 올려 볼을 슬쩍 건드렸다. 공은 골문 안으로 들어갔고, 잉글랜드 선수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주심은 득점으로 인정했으며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2대 1 승리로 끝났다. 경기 후 마라도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공에 닿은 것은 내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여세를 몰아 멕시코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마라도나교’라는 종교가 만들어졌을 정도다.
아르헨티나는 풍요로운 천연자원을 가졌으면서도 군사독재와 대책 없는 국가 운영으로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추락한 유일한 국가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유일한 희망은 축구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