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성영] 지도자의 눈물

입력 2014-05-22 02:39


우리는 대통령의 눈물을 봤다. 세월호 참사로 급기야 대통령의 사과와 눈물까지 받은 국민의 마음은 더 없이 아프고 민망하다. 대통령이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들의 이름을 롤콜(roll call)하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자 자식을 먼저 보낸 이 땅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오열했다. 온 국민은 살아 있는 미안함에 함께 울었다.

조국 근대사의 격변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국정을 책임진 역대 대통령들이 국가적인 중대사로 인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경우가 자주 있었지만, 눈물까지 흘린 경우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이번에 우리가 겪은 국가적 재난은 온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과 반성을 가져다 준 세기적인 사건임을 뜻하는 것이리라.

진중한 말과 행동은 지도자의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덕목이다. 지도자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파장은 사뭇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지도자가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쉽게 눈물을 보여서도 안 된다. 지도자의 연약한 모습은 그대로 국민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은 울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으로 전이(轉移)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대표가 대통령의 눈물에서 진정성을 느꼈다고 한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극히 절제된 언행으로 ‘철의 여인’처럼 비쳐진 대통령의 원초적인 눈물은 그러기에 백 마디의 웅변을 뛰어넘어 국민을 단합시키는 힘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슬픔과 좌절을 딛고 저마다 치열하게 자신을 성찰하며 다시 일어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결코 일과성의 감상주의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도자의 시의 적절한 눈물은 가정과 사회공동체를 단결시키고, 국가와 인류사회를 결속시키는 힘이 있음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다. 인류의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비탄에 빠진 베다니 동네를 찾아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죽은 나사로를 살렸다. 임박한 멸망의 도성 예루살렘 성벽을 붙잡고 통곡함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해방을 위해 전사한 용사들을 위한 게티즈버그에서의 눈물의 연설로 남북으로 분열된 미국을 하나로 묶었다. 땀과 눈물과 기도를 요청한 윈스턴 처칠의 호소는 위기에 처한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연합군의 승리로 역전시켰다.

이스라엘의 분열을 통일로 이끈 다윗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주소서”(시56:8)라고 고백한 눈물의 기도로 시련의 계절을 축복의 시대로 바꾸었다. 반세기 전, 독일에 차관을 얻으러 갔다가 그곳에서 무진 고생을 하는 우리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만나 함께 흘린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이 조국 재건의 씨앗이 되었듯이, 이번 박 대통령의 눈물은 선진국의 문턱에서 여지없이 드러난 국가 안전망의 구조적인 난맥상을 뜯어고치고 관민 유착의 오랜 적폐를 도려내는 등 그야말로 민족 대개조의 마중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슬픔과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순결한 꽃망울로 죄 많은 기성세대를 대신하여 참변을 당한 우리 자녀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가족들과 대통령과 국민의 눈물을 하나로 모아 조국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드는 거룩한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뉴욕타임스가 “한국은 지금 성찰 중”이라고 진단했는데 과연 우리는 치열하게 맹성하고 있는지 저마다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1912년, 같은 4월에 일어난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의 영웅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이 남긴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는 최후의 말을 우리라고 만들지 못할 일이 있는가. 머지않아 달라진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고 지구촌 이웃국가들이 “한국인처럼 되자(Be Korean!)”고 부러워할 그날 말이다.

김성영 백석대 석좌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