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한 함께 안겨야 책임총리 나온다
입력 2014-05-22 02:21
박근혜 대통령의 새 국무총리 지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조직 개편과 공직사회 쇄신 방안을 내놨지만 많은 국민들은 총리를 포함한 인적 쇄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제도나 시스템보다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잘 알고 있음을 말해준다.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박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려면 전체 국민이 믿고 따를 만한 ‘총리다운 총리’가 나와야 한다. 의전총리, 대독총리로는 절대로 국가 개조를 할 수 없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어느 정도 위임받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세월호 사고를 겪으면서 우리는 대통령한테 국가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돼 있어 문제가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행정부 2인자인 총리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희생자 유가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대통령만을 쳐다봐야 했다.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리더십의 약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헌법의 한계이기도 하다. 당장 분권형 개각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명실상부한 책임총리제를 시행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이 유능한 총리를 임명하고, 그 총리가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기만 하면 책임총리제를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 박정희·김대중 정부 때의 김종필, 노태우 정부 때의 강영훈, 김영삼 정부 때의 이회창 총리는 행정 각부 통할권(헌법 제86조 2항)을 충분히 발휘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통령과 알력이 없지 않았지만 의전총리, 대독총리보다는 훨씬 나았다고 하겠다.
박 대통령이 공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새로 임명될 총리는 기존의 행정조정 업무뿐만 아니라 관료사회 개혁과 국민 안전을 직접 챙기도록 돼 있다. 국민들이 새 총리 지명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맡기려면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를 겸비한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를 발굴해야 한다. 관료사회가 지금은 따가운 여론 때문에 숨죽이고 있지만 언제 개혁에 저항하고 나설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에게 서슴없이 직언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국무회의에서 장관들과 함께 받아쓰기를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수시로 독대해 국정 전반에 대해 소신껏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협조를 적극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정무 감각까지 갖춘 인물이라면 더 좋겠다. 이런 사람이라야 책임총리가 될 수 있다. 책임총리제 성공을 위해선 권한을 나눠 갖겠다는 대통령의 인식이 필수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