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유출·기업 인수전·연쇄살인… 드라마, 사회 이슈를 담다
입력 2014-05-22 02:01
“이게 오늘 바닷가에서 잡은 넙치요! 냄새 한 번 맡아 보시라고! 5년이 지난 바다에서 오늘 아침에 잡아 올렸습니다.” 건너편에 앉은 변호사 군단은 코끝을 움켜쥐고 인상을 쓴다. 검은 기름에 둘러싸인 각종 수산물이 책상 위를 나뒹군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어민들은 로펌 건물 1층에 자리를 틀고 앉아 적절한 보상을 요구한다. 어민 중 한 명은 자살을 시도한다.
뉴스에서 볼 법한 이 같은 장면들이 최근 배우들을 통해 브라운관 위에 펼쳐지고 있다. 최근 드라마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던 사건들이 에피소드로 등장하고 있는 것. 이와 함께 현실 사회를 적극 반영한 색다른 캐릭터들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어떤 매력이 시청자를 이 ‘진짜 같은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것일까.
◇트렌드는 ‘현실의 재구성’=앞서 언급된 장면은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 5화의 한 장면이다. 성공만을 향해 달리던 변호사 김석주(김명민 분)가 불의의 사고 후 기억을 잃으면서 정의감 넘치는 법조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선 각 회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발생했던 사건이 등장한다. 예컨대 위의 이야기는 2007년 발생한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연상시킨다. 이 사고의 피해 보상을 두고, 발생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시청자들을 ‘뜨끔’하게 하는 포인트다. 이 드라마의 4화에서도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2010년 재계를 뜨겁게 달궜던 현대건설 인수전과 비슷한 내용의 ‘태진건설 인수전’이 소재로 사용된 것. 지난달 29일 ‘개과천선’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재범 PD는 “드라마를 통해 사회 시스템이 지닌 양면성을 선보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회의 폭력성이 담긴 캐릭터들도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 tvN의 금토드라마 ‘갑동이’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범죄 수사물. 이 드라마에서 류태오(이준 분)는 낮에는 평범한 바리스타로, 밤에는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로 변하는 살인마다. 이준은 이 드라마를 위해 실제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인터뷰를 참고했다.
이외에도 MBC ‘트라이앵글’에서 형사 장동수 역을 맡은 이범수는 극 중 분노조절장애 연기를 실감나게 해내 호평을 받고 있다. 어릴 적 동생을 잃어버린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그의 장애는 극적인 상황을 만드는 소스로 사용된다. 치료 과정에서 엮이게 되는 의사 황신혜(오연수 분)와의 멜로라인도 이 장애에서 시작된다. 방송 이후 포털사이트 검색어로 ‘분노조절장애’가 올라 올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현실 고발 넘어 판타지로 위안을 주는 것”=전문가들은 최근 진화하고 있는 한국 드라마 시장과 이러한 트렌드가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기존 가족, 멜로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드라마에 피로감을 느꼈던 시청자들은 미국, 영국 드라마에 열광했다. 이후 국내에서도 이를 따라잡기 위해 탄탄한 구성과 짜임새, 높은 완성도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만들어 지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장르 드라마와 함께, 전문직 캐릭터가 드라마에 많이 등장하면서 사회의 생생한 현실을 다루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찾고 있다”며 “주인공이 사회 고발의 차원을 넘어 현실에서 이뤄지지 못한 내용을 극 중에서 해결하는 내용이 주”라고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이러한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통쾌함과 위안을 주는 역할을 드라마가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상덕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들이 검증된 에피소드인 논픽션과 픽션을 적절히 섞어가며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며 “극을 박진감 있게 이끌어 가기엔 좋은 방향이지만 자칫 현실 세계에서 대중이 인식하는 사실 관계에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