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도가 여기 숨어 있었구나… 괴산 ‘산막이 옛길’ 트레킹

입력 2014-05-22 02:58


‘깎아 세운 병풍바위는 별천지니/ 천장봉 아래서 기꺼이 즐기노라/ 산은 높고 물은 푸르러서 진경을 이루니/ 이곳 연하동이야말로 세상 밖 그림일세’ (노성도 ‘연하구곡가’ 중에서)

산막이 마을이 위치한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일대는 조선시대 유배지였다. 중중첩첩 산에 가로막혀 산막이 마을로 명명됐을 만큼 멀고 외진 곳이라 사람의 발길도 뜸했다. 그러나 달천과 어우러진 기암괴석, 그리고 깎아지른 벼랑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웠다. 조선 후기 선비 노성도가 10대 선조인 노수신의 유배지였던 이곳 풍경에 반해 아홉 곳의 절경에 이름을 붙이고 연하구곡가(煙霞九曲歌)를 읊으며 “가히 신선이 별장으로 삼을 만한 곳”이라고 극찬한 이유다.

하지만 연하구곡과 산막이 마을로 통하던 길은 1957년 순수 우리 기술로 준공한 최초의 댐인 괴산댐이 완공되자 대부분 물속에 잠기고 만다. 1곡인 탑바위와 9곡인 병풍바위 등 일부만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나마 유람선을 타야 볼 수 있다. 괴산댐이 생기기 전 징검다리와 섶다리를 건너 바깥세상 나들이를 했던 주민들은 나룻배로 건너거나 호수 위 산허리에 난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곡예하듯 걸어 다녀야 했다.

산막이 옛길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데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호수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길이었다. 댐이 생기기 전 35가구나 되던 산막이 마을은 수몰로 살기 힘들어진 주민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나면서 길도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 잊혀졌다.

그러다 전국에 도보길 열풍이 불면서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괴산군수와 인근 마을 주민들이 기억을 더듬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사은리 산막이 마을까지 4㎞ 구간에 덧그림을 그리고 스토리를 가미해 옛길을 복원했다. 가파른 경사면에는 나무데크를 깔고 호수가 보이는 전망대도 세웠다. 2010년 이 길이 처음 조성될 때 산막이 마을에는 3가구만 살고 있었으나 복원된 길이 인기를 모으면서 지금은 6가구로 늘었다.

지난해 140만 명이 방문한 산막이 옛길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생태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막이 마을까지 유람선이 오가는 차돌바위 선착장을 지나면 갈참나무 두 그루가 가지가 붙어 한 몸이 된 연리지와 남근석이 눈길을 끄는 고인돌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나지막한 돌담길을 따라 소나무 동산을 오르면 괴산호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와 자태가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풍경화를 그린다.

스릴 만점의 소나무 출렁다리 옆 동산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남녀가 함께 보기에는 민망한 자세로 서 있는 ‘정사목’이 눈길을 끈다. 이어 노루샘으로 불리는 조그만 연못이 나오면 탐방객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똑바로 가면 산막이 마을로 가는 평탄한 옛길이지만 오른쪽 산길을 선택하면 등잔봉을 거쳐 산막이 마을로 가는 등산로가 나오기 때문이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한반도 모양의 지형을 감상하려면 등산로를 선택해야 한다. 노루샘에서 등잔봉(450m)까지는 900m 거리로 상당히 가파르지만 절경의 연속이다. 푸른 산에 담긴 호수가 고도가 높아질수록 넓게 보여 자꾸만 뒤돌아보게 한다. 숨이 턱에 닿을 때쯤 솔향 그윽한 등잔봉이 쉼터 역할을 자처한다. 등잔봉은 옛날에 한 노모가 한양으로 과거 보러간 아들의 장원 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백일 기도를 올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등잔봉에서 한반도전망대까지는 1.1㎞로 경사가 완만한 능선이 이어져 걷기에 편하다. 짙은 솔향에 이끌려 푹신푹신한 흙길을 걷다보면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산과 호수, 그리고 마을의 모습이 여백미가 넉넉한 산수화를 그린다.

한반도전망대는 속리산국립공원의 군자산(948m) 기슭에 위치한 사은리의 지형이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오면서 한반도 지도처럼 보이는 곳이다.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 지형처럼 뚜렷하지는 않지만 동고서저의 지형과 S자를 그리는 괴산호의 물줄기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한반도 지형의 깎아지른 층암절벽인 연천대 위에 세워진 환벽정(環碧亭)은 최근 지어진 정자.

한반도전망대에서 천장봉(437m) 방향으로 200m를 더 가면 산막이 마을로 가는 하산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산막이 옛길과 만나는 진달래 동산까지는 약 700m로 경사가 급하다. 진달래 동산에서 가재연못과 떡메 인절미 체험장을 지나 산딸기가 익어가는 흙길을 타박타박 걷다보면 현대식 건물로 단장한 산막이 마을이 나그네들을 맞는다.

마을에는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노수신(1515∼1590)이 을사사화 때 이곳으로 유배 와서 살던 곳에 지은 수월정(水月亭)이 단아한 모습을 자랑한다. 노수신은 명종 2년에 진도로 귀양 가서 19년을 살다가 이곳 산막이 마을로 옮겨온 지 2년 만에 선조가 즉위하면서 훗날 영의정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연하동에 있던 수월정은 괴산댐이 완공되면서 수몰 위기에 처하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산막이 옛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 앞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출발지로 돌아간다. 그러나 한반도전망대로 등산을 한 사람들은 괴산호 수변을 따라 설치된 산막이 옛길을 걷는다. 산막이 옛길에 설치된 나무데크는 918m로 40m 절벽 위에 세워진 고공전망대, 느티나무 위에 만들어진 전망대인 괴음정, 괴산호가 가장 넓게 보이는 망세루 등이 설치되어 있다.

산막이 옛길에는 바위가 뫼 산(山)자로 보이는 괴산바위를 비롯해 앉은뱅이 약수, 옷 벗은 미녀참나무, 여우비 바위굴, 매바위, 호랑이굴 등 지형지물에 스토리를 입힌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발아래 수면 속에 숨은 연하구곡의 절경을 상상하며 진경산수화 속을 유유자적하다 보면 찔레꽃 향기가 남은 여정을 함께 한다.

괴산=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