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
입력 2014-05-22 02:30
“요즘 군인들이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격퇴하는 일차적인 임무도 중요하지만 우리 군도 이제는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Military Operations Other Than War:MOOTW)’ 수행을 위한 체제를 갖춰야 한다.”
지난주 만난 한 군 원로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보듯 앞으로 우리 군이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 수행을 위한 요청을 받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은 우리에게는 낯선 용어이지만 미군은 1990년대 초반부터 사용하고 있다. 91년 발간된 미군의 ‘합동작전교리’에서 이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2년 뒤 발간된 미 육군 야전교범 ‘작전요무령(FM 100-5 Operations)’은 이를 보다 구체화했다. 군사작전을 ‘전쟁’과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으로 구분하고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은 ‘군대 간 무력 충돌을 수반하는 것이 아닌 분쟁 상황과 평시 상황에서 전개되는 작전’이라고 규정했다.
국가와 주(州) 및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 재난구조, 국민지원, 마약저지, 평화유지, 대(對)전복활동, 비전투원 후송, 평화강제 등이 포함된다. 이 작전의 목적은 적군 제압이 아니다. 폭력과 피해를 최소화하고 안전과 평화를 최단기간 내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미군은 95년부터는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 교리’를 별도로 발간해 더 세분하고 전문화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수행해온 미국이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것은 냉전(冷戰) 이후 평시 군의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 강대국 간 전쟁이나 강대국을 대신해 치르는 대리전쟁의 가능성은 낮아졌다. 대신 군이 군사작전뿐 아니라 민간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안을 지원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이미 다양한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을 수행해 오고 있다. 91년 쿠르드 난민구호 작전, 93년 소말리아 재난구호 작전, 94년 르완다 난민구조 작전이 대표적이다. 미군의 비군사적인 활동은 국제적인 구호·지원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한 국가적인 재난에서도 빛을 발하기도 했다. 대규모 자연재난과 인신매매, 해적행위, 종족분규 중재활동,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범죄 등은 기존 민간조직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평소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조직적으로 문제해결 역량을 키워온 군은 대규모 재난과 사고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재난에는 어김없이 군이 관여한다. 지난해 초강력 태풍 하이옌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 필리핀은 구호 활동에 나선 각국 군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미국은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 등 함정 9척과 식량공급 및 인력수송용으로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 14대, 해병대를 포함한 병력 9000여명을 파견해 적극적인 구호 활동을 펼쳤다. 일본도 자위대원 1180여명과 대형함정 3척, 항공기 16대를 파견했다. 우리 군도 파견돼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군이 투입된다. 국방부가 지난해 발간한 ‘국방재난대응백서’를 보면 77년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 이리역 폭발사고를 비롯해 국가적인 재난이 있는 곳에는 군이 함께했다. 물론 칭찬만 받은 것은 아니다. 주먹구구식 지원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간 군은 재난과 같은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 분야에 대해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세월호 사고는 군도 이제는 재난 대응에 필요한 전문적인 체계를 갖춰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줬다. 재난 시 군의 임무와 역할에 대해서도 보다 분명한 지침이 수립돼야 한다. 신설되는 국가안전처가 고민해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