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체감 실업자 300만명
입력 2014-05-22 02:30
“형,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좀 쉬면서 삶을 돌아보겠습니다. 제2의 인생을 설계할 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한 달 전쯤 날아든 문자메시지다. 국내 굴지의 보험회사 부장이었던 학교 후배 K의 퇴직 인사였다. 마음이 짠했다. 40 중반의 그가 헤쳐 나가야 할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동안 대기업 임직원들의 인사이동이 주로 연말에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봄날의 퇴사 소식은 의외였다.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업을 중심으로 지난 2월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있다. 그나마 사정이 좋은 기업은 그룹 내 계열사로 대상자를 전환 배치하기도 하나 대부분은 희망퇴직 형식을 빌려 퇴출시키고 있다. 업계에서는 매달 1000명 이상 짐을 싸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자수익 감소, 수수료율 하락 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계속된 데 따른 것이다. 임원급은 넉넉한 위로금이라도 받지만 대부분 뾰족한 생계대책 없이 창졸간에 실업자 반열에 들어선다.
통계청은 지난 18일 ‘4월 고용동향’을 통해 실업자 수가 103만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상 실업자지만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을 포함한 ‘체감 실업자’는 정부 공식 통계의 3배가 넘는 316만명에 달했다. 여기에는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자, 주당 36시간 미만 취업자 중 추가 취업희망자 등이 들어 있다. ‘체감 실업자’는 정부 고용 정책이나 복지 지원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통계청은 공식 실업률과 체감 실업률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보조 지표를 활용하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공식 실업률의 허점을 보완한 ‘노동 저활용 지표’를 공개하겠다고 밝혔으나 과연 얼마나 정확하게 실태를 반영할지는 미지수다.
최근의 실업 추세가 우려되는 것은 그 내용 때문이다. 고급 상용직 인력들이 밀려나고 구직을 단념하거나 일을 하지 않고 무작정 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취업자 증가폭도 갈수록 둔화되고 있다. 4월의 청년층 실업률은 무려 10%(전년 동기 대비 1.6% 포인트 상승)였다. 고용여력이 높은 서비스업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우리 산업구조를 감안할 때 앞으로의 고용 창출력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한번 직장을 잃으면 다시 취업하기 쉽지 않은 것이 우리 고용시장의 현실이다. 더 더워지기 전에 K에게 밥이나 한끼 사야겠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