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창준 (12) ‘도덕성 회복·긴축재정’ 들고 연방하원의원 출마
입력 2014-05-22 02:10
제41선거구에서 공화당 후보는 나를 포함해 6명이었고, 민주당까지 합쳐 총 12명의 연방하원의원 후보가 나왔다. 시의원 선거 때처럼 나는 주목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이름을 알린다고 생각하라. 다음을 노려라”는 주변의 격려가 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그런 마음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실패한 적이 없었다.
선거운동을 맡아줄 매니저부터 찾았다.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선거 전략가 밥 가우티를 어렵게 만났다. 그는 “41선거구는 척 베일러가 가장 유력하다.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완강한 태도에 나는 실망했지만 그를 다시 찾아갔다.
“나는 공화당에서 주목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입니다. 제가 이민자라는 사실은 수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오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장점이 될 것입니다. 유권자들은 말만 번드르르한 변호사들이 가득한 정치판에 신물이 나 있습니다. 저는 말정치가 아니라 엔지니어답게 실제로 설계하고 시공하는 정치를 보여줄 겁니다. 게다가 저는 이미 충분한 재산을 갖고 있으니 선거비용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데도 저를 돕고 싶지 않으신가요?”
가우티의 눈빛이 빛났다. “선거엔 이슈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들고나오실 건가요?”
“간단합니다. 긴축재정과 도덕성 회복, 두 가지뿐입니다.” 순간 가우티가 일어서서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당신이야말로 제가 찾던, 때 묻지 않은 후보입니다. 당장 일을 시작합시다.” 가우티와 손잡았다는 소문에 나를 돕겠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원봉사자들이 몰렸고, 전국의 한인들로부터 성금이 밀려들었다. 교포들의 모금은 눈물나게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한 부담감으로 나를 압박했다.
후보가 되자마자 공화당에서 나온 여성 선거운동원들이 양복점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들은 내게 묻지도 않고 진한 감색 정장을 서너 벌 맞추고 미국 성조기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파란색 줄무늬가 들어간 넥타이를 여러 개 골랐다. 검정 양말에 검정 구두, 버튼다운 셔츠에 장식 없는 허리띠를 매니 누가 봐도 ‘나는 보수주의자요’ 하는 모습이 됐다. 가우티는 내가 완벽한 공화당 후보가 되도록 일거수일투족을 점검했다. 흐트러진 복장, 부적절한 여자관계 등 상대방에게 꼬투리를 잡힐 만한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했다.
총 12명의 후보 가운데 나만 동양인이었다. TV 토론을 위해 남몰래 전문가를 고용해 주말마다 카메라 앞에서 토론하는 훈련을 했다. 하지만 미국 사회와 정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는 곤란할 때가 많았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나았다.
“저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확신을 갖고 노력해 사업가가 됐습니다. 그래서 정치를 잘 모르고, 변호사처럼 말도 잘 못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도시계획을 잘합니다. 41선거구에는 재개발 사업을 할 곳이 많습니다. 통계를 보니 연방의원의 3분의 2가 변호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변호사를 보내시렵니까, 아니면 정치밖에 모르는 직업정치인을 보내시겠습니까. 긴축재정으로 세금을 한푼이라도 줄여줄 사업가를 보내주십시오.”
선거운동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직접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공식 지지를 호소했다. 그 덕분인지 진보적인 LA타임스에서 나를 지지한다는 논설을 실었다. 지방신문들도 대부분 나를 지지했다.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동시에 쓰라림도 맛봐야 했다. 당시만 해도 동양인 이민자라며 악수도 안 받고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백인도 많았다. ‘20년 동안 겪어온 일인데, 이까짓 것으로 못 이기겠나.’ 그때마다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