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탐사기획 이번에는 제대로 뽑읍시다 (3)] “민의보다 내 꿈”… ‘출마 위한 줄사퇴’ 언제까지
입력 2014-05-21 03:52
(3) 정치적 야심 앞에 공직은 헌신짝
이번 6·4지방선거 이후의 정치 스케줄을 보면 2016년 4월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2017년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은 시간표다. 내년에는 아무 선거가 없어 겉으론 지방자치에서 매진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속으론 다른 선거를 준비할 시간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들 사이에서 대거 사직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지방자치 선출직의 중도 사직에 대해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대통령 임기는 5년, 국회의원·지방자치 선출직 임기는 각각 4년이다. 임기가 각기 다르다 보니 시·도지사가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선 자신의 임기를 다 채우고 몇 년을 그냥 기다리거나 임기 도중에 뛰어들어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도 마찬가지다. 2년의 간격을 두고 지방선거와 총선이 실시되기 때문에 이들이 총선에 출마하려면 임기를 마치고 2년의 공백기를 갖거나 임기를 2년만 채우고 중도 사직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잠룡들, 시·도지사 대거 도전장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이는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는 이미 대권주자급으로 몸집이 커진 상태다. 지방선거 출마 자체가 ‘더 큰 야망’을 위한 중간다리로 인식되는 분위기 때문에 두 후보 모두 “임기를 다 마치겠다”고 강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안희정 충남도지사 후보와 새누리당 원희룡 제주도지사 후보는 그 반대다. 충청권과 제주가 그동안 중앙정치에 소외됐던 점을 부각시키며 오히려 대권 도전을 선거 전략으로 내세워 민심을 공략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안 후보는 지난 18일 “지방정부 운영을 통해 나름의 확신이 들면 그 다음날에라도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선언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원 후보도 “도지사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저희 세대에는 와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새누리당에서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 홍준표 경남도지사 후보, 새정치연합에서는 송영길 인천시장 후보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다면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 수 있는 잠재적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기초단체장 꿈은 국회의원, 시·도지사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들은 모두 한 단계 높은 정치적 꿈을 꾼다.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단체장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국회의원과 시·도지사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당선자 중 스스로 사직한 기초단체장 12명의 길도 분명하게 엇갈렸다. 6명은 2012년 4·12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중도 사퇴했고, 나머지 6명은 이번 6·4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경선에 뛰어들기 위해 사직서를 냈다.
특히 시·군·구 예산 집행권 등 막강한 권한을 쥔 기초단체장이 지역구 국회의원 자리를 탐내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정치 현상이 됐다. 지금 이 순간, 이번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당선을 위해 뛰는 후보들 중에서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2016년 총선에 출사표를 던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시·도 의원(광역의원) 역시 두 가지 꿈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뒤 사직한 광역의원 51명 중 31명이 2012년 총선에 승부수를 걸었다. 2016년 총선에도 광역의원들의 도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군·구의원(기초의원)들이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사직하는 것도 더 이상 낯선 일은 아니다.
“풀뿌리 정신에 위배” “불합리한 제도 탓에 불가피”
정치적 꿈을 향한 광역·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들의 중도 사직에 대해 의견은 엇갈린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방선거에 당선한 뒤 중도에 사퇴하고 중앙정치에 뛰어드는 욕망이 국회와 지방의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각각 수직적 상하 관계로 설정한 행위라면 권위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중도 사직은 지방자치의 연속성을 훼손하고 지역사업의 중단이 불가피해지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재보선의 난립을 통해 과도한 비용이 드는 것도 폐해”라고 지적했다.
반면 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미국과 서유럽에서 지방자치 선출직 출신들이 중앙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중도 사직하는 것은 임기가 서로 상충하는 불합리한 제도 탓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지방자치 선출직의 임기를 맞추도록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탐사취재팀=하윤해 팀장, 엄기영 임성수 권지혜 유성열 유동근 정건희 김동우 기자 dk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