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 목사의 시편] 책임질 일과 먼저 해야 할 일
입력 2014-05-21 03:19
세월호 침몰 참사 수습에 나선 정부 관계자들과 실무자들은 연일 유족들과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한다면 어느 때보다도 언행을 조심하고 진실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고 교훈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승객 구조를 위한 초기 대응이 미진했다는 지적에 “80명을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고 말한 해경 간부는 직위 해제됐다. 침몰 사고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해 물의를 일으킨 공무원도 즉시 직위를 박탈당했다.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의 헌화를 거절한 유족들을 “미개한 행동, 예의도 없는 짐승”이라고 비난했던 모 대학 교수도 사과의 글을 남긴 후 사직했다. KBS 보도국장은 세월호 희생자 300여명을 교통사고 사망자와 비교해 말했다가 사임했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있었던 청와대의 조문 연출논란은 어떻게 된 것일까. 정부 관계자는 “미리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가 당일 합동분향소에서 눈에 띈 해당 노인에게 ‘부탁’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청와대가 이 노인이 유족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조문 후에 이 노인에게 다가가 위로했고, 이 모습은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장면인 것처럼 보도됐다. 그러나 이 노인은 유가족이 아니라 안산 시민이었다. 참담한 일이다.
만약 대통령의 조문이 ‘연출된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연출은 미리 각본을 준비하고 계획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적절치 못한 언행이 우발적이라면, 연출된 조문이라면 사전에 계획하고 의도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유가족과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심하게 반발하는 유가족들을 의식해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사과했지만 상처와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대변인은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유가족들에게 “유감”이란 말로 불쾌한 감정을 전했다. 그가 말한 유감이란 “감히 대통령이 사과를 했는데 안 받아들여!”라는 의미였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유감인가.
2008년 7만여명의 사망자를 냈던 중국 쓰촨성 대지진에 대처했던 중국 정부와 그 지도자들이 부럽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진 발생 1시간30분 만에 지진현장에 도착해 구조작업을 지휘하면서 주민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불어넣었다. 국민들에게는 정부의 위기 극복 의지를 나타내는 메시지가 됐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앞에서 우리 총리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직서를 냈고, 대통령은 총리의 사직을 수락했을 뿐이다. 정부에 책임질 일과 먼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지, 분노하는 유가족과 국민들의 마음을 얼마나 읽고 있는지 묻고 싶다.
<여주 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