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선악과, 그건 사랑이었네
입력 2014-05-21 02:14
창세기 3장 8∼10절
혹자는 선악과를, 하나님이 인간을 테스트해서 말을 듣지 않자 에덴에서 쫓아내는 심술궂음과 독선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큰 오해입니다. 오히려 선악과는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 중 인간에게 부여하신 가장 위대한 선물, 자유의지를 사람됨에 사용할 수 있는 권한과 그분이 사랑으로 주신 경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선악과의 문제는 본디 에덴의 중심자리를 누가 차지하고 있느냐의 문제이자, 우리 삶의 주인에 대한 신뢰의 문제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공간의 존재였던 인간은 잘못된 자유의 선택에 따라 점점 중심공간이 하락이동하고 마침내는 퇴출당하고 맙니다. 에덴의 중심자리가 점점 변화되는 것을 보십시오. 1장의 충만한 교감과 동행이 있던 곳에는 선악과가 자리하지 않습니다. 2장으로 넘어가면 선악과가 중심경계에 자리합니다. 타락 이후에는 하나님의 눈을 피하는 인간의 도피처가 되고 결국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이는 끊임없이 파라다이스를 찾는 인간의 동기가 피난처를 찾기 위한 것으로 전락하는 역설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니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은 성서 전체를 흐르는 질문이요, 자신의 삶의 중심 공간이 어딘지를 묻는 근원적인 질문입니다. “사람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너의 삶은 지금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느냐.”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제거하고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은 언제나 선악과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네 삶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선물한 그 위대한 선택의 자유의지를 어디에다 두고 지금 살아가고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하나님과 함께 누리고 해석하고 다스리고 돌보고 협력하는 자리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홀로 판단하고, 뱀과 함께 불평하고 탓하고 핑계를 대면서 살게 됐습니다. 축복의 공간을 버리고 뱀의 소리를 선택하면서 인간은 그에 대한 책임도 홀로 지게 됐습니다. 잘 산다는 것이,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사랑하면서 세계를 돌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 지배하는 것, 누군가의 위에 서는 것, 권력을 잡는 것으로 잘못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뱀의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뱀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벌어지게 하고, 그리하여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게 하고, 서로 시기하게 하며 경쟁하게끔 유도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졌던 모든 축복과 권리를 망각하게 해서 하나님 없이 하나님처럼 살게끔 인간의 욕망을 부추깁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려 애씁니다. 사랑의 경계가 필요합니다. 생명의 경계가 필요합니다. 경계가 없다면 혼란이 생길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세워두신 그 경계를 우리 안에 잘 세워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 걸음을 멈추고, 걸음과 그 걸음의 사이에 하늘의 공간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늘의 한 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늘들이 내 발자국 하나하나에 담긴다고 상상해 봅시다. 관계들 사이에 하나님의 축복이 내려오고 그분의 은총이 우리의 삶 구석구석 넘쳐흐를 것입니다. 이 공간과 틈에 자신의 욕망과 계획, 상처를 집어넣지 마십시오. 그 부재를 남겨두고 경계로 삼으면, 그것이 우리 삶에 생명을 부어주기 시작할 것입니다.
김화영 목사(나다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