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앵그리 맘

입력 2014-05-21 02:09

지하철에 빈 자리가 생겼을 때 먼 거리에서도 쏜살같이 돌진해 기어코 좌석을 차지하고, 여자화장실이 붐비면 스스럼없이 한산한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는 사람. 얼굴에 ‘철판’ 깔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용감한 일들을 하는 부류가 소위 아줌마다. ‘아줌마 경제학’의 저자인 나카지마 다카노부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아줌마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지하철에서 좌석이 낭비되는 상황을 바로잡는 것은 자원분배상 바람직한 행위이고, 한산한 남자화장실의 가동률을 높이는 것 역시 합리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줌마는 ‘합리적 경제인’이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성이 있다. 남성, 여성, 그리고 아줌마”라는 우스개도 있다. 나이 들면서 중성화되는 아줌마 특성을 꼬집은 말이렷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세라 페일린은 “하키맘과 투견을 구분하는 차이가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립스틱이다”는 연설로 미국 중산층 주부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자녀 교육에 억척스러운 ‘하키맘’ ‘사커맘’으로 자처하며 ‘페일린 신드롬’을 일으켰다.

알래스카 주지사 출신인 그녀는 실제로 5명의 아이를 키우는 44세 워킹맘이었고, 5명의 아이 중에는 임신한 고등학생 딸과 다운증후군에 걸린 막내아들도 있다. 여느 엄마들과 다를 바 없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을 부각시킨 선거 전략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면서 당시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에게 뒤지고 있던 매케인 지지율을 단숨에 끌어올렸고, 페일린은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부상했다. 결국 자질 시비가 불거져 대선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앵그리 맘(분노한 엄마)들의 행동이 두드러진다. 유모차를 끌고 침묵시위에 나서거나 지난주말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추모 촛불집회에도 중학생,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이 많았다. 미국 최대 한인 여성 사이트인 미시USA 회원들은 모금을 통해 뉴욕타임스에 ‘진실을 밝혀 달라’는 광고를 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이들이 나선 것은 세월호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엄마들의 집회가 반정부 집회, 정치적인 집회라고들 말하지만 아이들 수백명이 죽은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우리들의 이름은 그냥 엄마다”라는 이들의 절규가 가슴에 와 닿는다. 6·4지방선거는 40대 앵그리 맘의 표심에 좌우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의 표가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