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대국민 담화-관피아 척결] 채용→ 근무→ 퇴직 후까지 ‘틀’ 싹 바꾼다

입력 2014-05-20 03:54


공직사회 大개조 어떻게 추진하나

정부를 이루는 근간인 공무원 체계가 대대적으로 혁신될 예정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고질적인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 복지부동·철밥통으로 표현되는 공무원 조직의 적폐가 전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는 채용부터 퇴직 이후까지 비정상적 관행이 만연했던 공직사회를 뿌리째 바꾸는 방안이 담겼다.

◇‘끼리끼리 민관유착’ 관피아 척결=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는 오랫동안 쌓여온,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비정상적인 관행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서로 봐주고 눈감아주는 민관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관피아 척결을 위한 첫 번째 대책으로 박 대통령은 안전감독, 인허가 규제, 조달업무 등과 직결되는 공직 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는 공무원을 임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른 기관에 대한 공무원의 취업도 더욱 엄격하게 제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통해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과 관련된 규정들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박 대통령은 해운조합, 한국선급 등 이번에 문제가 된 조합·협회를 포함해 퇴직 공직자의 취업제한 대상 기관 수를 3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했다. 공무원들의 퇴직 후 취업제한 기간은 2년에서 3년으로 강화된다.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도 ‘소속 부서’가 아니라 ‘소속 기관의 업무’로 확대해 규정의 실효성을 높일 예정이다.

고위 공무원에 대해 퇴직 후 10년간 취업기간 및 직급 등을 공개하는 취업이력공시제도도 도입된다. 공무원들의 자리 이동 현황을 정밀하게 살펴 민관 유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박 대통령이 ‘공직자윤리법 개정 카드’를 꺼내 든 것은 현행법에 구멍이 너무 많고 허술해 관피아를 양산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피아(해수부+마피아)’가 해운 관련 기관들을 장악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세월호의 안전 검사도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대통령 담화 이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긴급 지시에 따라 오는 21일 민관 유착 비리 척결을 위한 전국 검사장회의를 긴급 소집키로 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주재할 검사장회의에서는 민관 유착 수사 대상과 영역, 방향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시제 폐지 예고=박 대통령은 “민간 전문가들이 공직에 더욱 많이 진입할 수 있도록 채용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며 궁극적으로 고시제도를 폐지할 것을 시사했다.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는 공직사회의 폐쇄성을 혁파하고 개방성·전문성의 토대 위에서 재편하겠다는 의미다. 채용, 배치, 평가, 승진 등 공직체계 전반에 ‘정상화’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공무원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옛 행정고시)을 통한 선발 규모를 대폭 축소해 민간 경력자 채용 숫자와 5대 5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밝혔다.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 동시에 전문성도 가미하겠다는 얘기로 민간 채용 비율은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유명무실해진 공무원 개방형 직위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중앙선발시험위원회를 설치해 각 부처에 맡겨뒀던 민간 전문가 선발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현재 과장급 이상 직위에 민간 전문가가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형 충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결국 공무원들만 다시 뽑아서 무늬만 공모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질타했다.

다만 갑작스러운 제도 변화로 공직사회가 동요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듯 박 대통령은 “전문성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공무원들은 더욱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와 함께 보다 나은 여건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막강해지는 총리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밝힌 공무원 ‘대(大)개조’ 수준의 쇄신, 정부조직의 대대적 개편에 따라 국무총리의 권한과 책임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조직·인사 기능을 전담하는 행정혁신처, 국민 안전·재난 대응을 총괄하는 국가안전처 등 2개 신설 조직이 모두 총리 산하로 들어가면 명실상부한 책임총리제가 실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전·재난 총괄하는 국가안전처=박 대통령 구상에 따라 새로 출범하는 국가안전처는 각 부처에 분산된 안전 및 재난대응 관련 조직을 통합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다. 박 대통령은 “지휘체계를 일원화해 현장 중심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가안전처는 현재 각 부처에 분산된 안전 조직을 통합하고, 해경의 구조·구난·해양경비 업무를 흡수해 육상 및 해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유형의 재난에 대응하게 된다. 부처별로 주관해온 항공·에너지·화학·통신인프라 재난 역시 모두 국가안전처로 이관된다. 원자력과 식품·의약품을 제외한 모든 유형의 재난을 국가안전처가 관할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가안전처 조직은 크게 소방본부, 해양안전본부, 특수재난본부로 구성된다. 육상 재난은 현장의 소방본부와 지방자치단체, 재난 소관 부처가 공동 대응하고 해상 재난은 서해·남해·동해·제주 등 4개 지역본부로 구성된 해양안전본부에서 총괄해 현장 구조·구난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항공 재난을 비롯해 에너지·화학·통신인프라 등 사회 발전으로 인해 다양화하는 각종 재난에 대해서는 특수재난본부가 담당한다. 특히 첨단 장비와 고도의 기술을 갖춘 특수기동구조대도 산하에 신설된다. 초동 대처가 이뤄지지 않아 세월호 안에 갇힌 승객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무관치 않다.

◇예산 사전협의권·특별교부세 권한 부여도=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재난안전 예산도 국가안전처가 관장한다. 박 대통령은 “국가안전처 기능 보장을 위해 안전 관련 예산 사전협의권과 재해예방 관련 특별교부세 배분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예산 사전협의권을 준다는 것은 기획재정부와 예산 편성을 우선 협의할 수 있다는 뜻으로, 안전 분야와 관련된 전권을 보장받는다는 의미다.

특히 국가안전처는 안전행정부가 재해지역에 교부하는 특별교부세 배분 권한까지 쥐게 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안행부의 특별교부세 중 재해예방 관련 금액이 절반 정도 되는데 재해예방 특별교부금을 국가안전처가 관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재해예방 관련 특별교부세 금액은 4930억원이다.

국가안전처는 또 구성원이 전문가 위주로 공채로 선발되며 순환보직도 엄격히 제한해 전문성을 계속 키우는 식으로 운영된다. 전문성에 맞춰 인원을 선발하는 직위분류제가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가안전처를 국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공직사회를 변화시키는 시범부처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층 막강해진 총리실=국가안전처와 행정혁신처 2개 부처 신설, 편입은 결과적으로 총리실 기능과 역할의 대폭 강화로 이어지게 됐다. 공직사회의 대대적 개편을 목표로 한 부처와 국민안전을 총괄하는 부처가 총리 산하로 들어가면 이번 정부 들어 존재감이 희박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총리의 역할이 한층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안행부의 기존 인사 및 조직, 기능을 그대로 이관받는 행정혁신처가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등 강도 높은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경우 한층 존재감과 위상이 부각될 전망이다.

남혁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