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대국민 담화-담겨진 메시지] “채 피지도 못한 그들 지켜주지 못해…” 회한의 눈물
입력 2014-05-20 02:06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국민 앞에 눈물을 흘렸다. 흐르는 눈물에는 숨져간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과 함께 세월호 침몰 당시 살신성인에 대한 감사, 제때 구조에 나서지도 못한 무능한 정부 수장으로서의 회한이 들어 있었다. 사고를 만들고도 제 살길만 찾은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 더 나아가 이 모든 걸 감시하지도 감독하지도 못했던 공직사회 전체에 대한 분노 또한 엿보였다.
“채 피지도 못한 학생들과 가족여행에서 혼자 남은 아이…저도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이었습니다.”
오전 9시 청와대 춘추관 2층 기자회견장 단상에 선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시작하며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의 여행길을 지켜주지 못해 비애감이 든다”고 말했다. 입이 떨렸고, 울음을 참는 듯했다.
한참 동안 공무원 ‘대(大)개조’ 방안을 조목조목 열거하던 박 대통령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아비규환의 와중에도 침몰하는 배 속에서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을 희생한 사람들을 호명했다. “어린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탈출시키고 실종된 고 권혁규군,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려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망한 고 정차웅군, 가장 먼저 119 신고를 하고도 정작 살아 돌아오지 못한 고 최덕하군.” 이미 박 대통령의 눈은 붉어져 있었고 볼에는 눈물이 흘렀다.
계속 박 대통령은 “제자들을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고 남윤철 최혜정 선생님, 마지막까지 승객 탈출을 돕다 생을 마감한 고 박지영 김기웅 정현선님, 양대홍 사무장님”이라고 말했다. 울음이 멈춘 것은 “민간 잠수사 고 이광욱님, (이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봅니다”라고 말하고 난 다음이었다. 복받친 감정을 추스르듯 수초 동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턱을 굳게 다무는 듯도 보였다.
20년 가까이 정치인으로 살아온 박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우는 모습을 보인 경우는 다섯 번뿐이다. 2004년 3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로 연설했을 때와 2010년 4월 27일 천안함 폭침 희생자 합동분향소 참배, 2012년 12월 대선 당시 강원도 유세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춘상 보좌관 빈소를 방문했을 때 그는 울었다. 지난 3월 독일 드레스덴공대 연설 후 ‘그리운 금강산’ 실내악 연주를 들었을 때도 눈물을 흘렸다. 최근엔 청와대로 찾아온 세월호 유족대표를 면담하면서 또 울었다고 한다.
24분간이나 진행된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의 ‘무한 책임’을 언급했고, 공직사회 변혁,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이다가도, 대형 참사 원인을 되짚는 대목에선 어느새 깊은 후회를 감추지 못했다. 때로는 입이 떨려 머뭇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톤을 올렸다. 회색 정장 차림에 내내 굳은 표정이었던 박 대통령은 사과를 하면서 90도 이상 국민에게 허리를 숙였다.
담화 발표장에는 내각 각료와 수석비서관 이상 청와대 참모진이 전혀 배석하지 않았다. 청와대에서도 대변인 등 실무 필수인원만 배치됐다. “내 책임”임을 밝히는 대통령으로서 의전 ‘겉치레’를 마다했다는 전언이다.
늘 그렇듯 박 대통령은 이번 담화문도 발표 직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고 한다. 담화 장소도 당초 청와대 본관뿐 아니라 팽목항, 안산 단원고까지 검토했다가, 마지막에 기자들이 상주하는 공간인 춘추관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잘못을 사과하는 자리인데, 외부 장소에 나가 행사처럼 거창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박 대통령의 판단 때문으로 추측된다.
박 대통령은 담화 말미에 참사 발생일인 4월 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다. 또 담화 후에는 해경 해체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실종자 수색에 철저를 기하라”고 지시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