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대국민 담화-파렴치 기업 손본다] “세월호 비호세력 있다면 밝혀내겠다”
입력 2014-05-20 03:48
대형사고 처벌 법 개정도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세월호 특검’ 실시 의사를 재확인했다. 지난 16일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 대표단과의 면담에 이어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특검 필요성을 직접 언급하면서 특검 도입 추진은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이르면 다음 달 말 본격 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수사 대상과 범위, 시기 등을 놓고 여야 간 입장 차가 큰 상태다.
◇특검 수용한다지만…=박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청해진해운의 성장 과정에서 각종 특혜와 민관 유착이 있었던 것을 의심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겠다”고 밝혔다. ‘필요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현재 검·경 합동수사본부, 인천지검 등에서 수사를 진행 중인 만큼 그 결과를 지켜본 뒤 최종적으로 특검 실시 여부를 결정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검이 도입될 경우 2012년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에 이어 역대 12번째 특별검사팀이 출범하게 된다.
담화 내용을 보면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 대상으로 세월호 선사의 비리와 이를 둘러싼 유착관계 규명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 측이 요구하고 있는 해경과 해양수산부 등 정부 측의 초동 대응 실패 문제도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야당은 더 나아가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까지 겨냥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민병두 공보단장은 “국민은 사고 당시 국가의 총체적인 재난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였고 누가 직무유기를 했나를 궁금해한다”면서 “국회는 물론 청와대까지 포함해 즉각 성역 없는 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특검은 ‘상설특검법’이 발효되는 다음 달 19일 이후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야당은 발효 즉시 특검에 들어가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여당은 검찰 수사 마무리 이후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대형 사고 엄중 처벌토록 법 개정=박 대통령은 세월호 이준석(68)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을 버리고 도망친 것에 대해 “사실상 살인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심각한 인명피해 사고를 야기하거나 먹을거리 갖고 장난쳐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는 엄중한 형벌이 부과될 수 있도록 형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대형 재난을 키웠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안전사고의 경우 주로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적용되는데 법정 최고형이 징역 5년에 불과하다. 다른 죄목을 추가해도 무기징역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502명이 생명을 잃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이준 삼풍건설산업 회장은 징역 7년6개월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역대 대형 재난 중 가장 높은 처벌 수위였다. 검찰이 세월호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한 것도 통상의 처벌 규정으로는 중형 선고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이 ‘엄중 처벌’을 천명함에 따라 조만간 대형 인명사고나 유해식품 사범 등에 대한 단행법이나 특별법의 처벌 조항이 현행보다 훨씬 상향 조정되는 내용의 법 개정이 추진될 전망이다.
대법원 차원의 양형기준 강화 움직임도 있을 수 있다. 법무부는 “형법과 관련법들에 대해 개정할 필요가 있는 부분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호일 나성원 기자 blue51@kmib.co.kr
담화 후 주목받는 법안 ‘2제’
(1) 부정청탁금지 법안인 일명 ‘김영란법’
‘관피아 유착고리 끊겠다’ 의지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발표한 세월호 관련 대국민 담화문에서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 이해 충돌 방지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드러난 ‘관피아’(관료+마피아) 유착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은 당초 원안보다 후퇴한 내용이어서 반발하는 목소리도 높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과 함께 돈을 받거나 요구하면 청탁 성사나 형사처벌 여부에 관계없이 곧바로 공직에서 추방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의미한다.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된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할 수 있다. 2012년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발의한 법안은 정부 초안이 마련된 지 2년 만인 지난해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당초 원안은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공직자가 금품을 수수하거나 요구, 약속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한 금품의 5배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법무부 등은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있어야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형법 이론을 내세워 반대했다. 결국 법안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만 형사처벌하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박 대통령의 담화를 계기로 김영란법이 다시 주목받자 수정된 법안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는 담화 직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정부가 제출해 국회에 계류 중인 부정청탁금지법은 김영란법 원안이 아니다. 대가성 없는 금품 향응까지 형사처벌하는 내용 등이 법무부의 반대로 빠진 ‘박영란법’이다. 박영란법을 철회하고 김영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2) 안전 소홀 기업에 책임묻는 ‘유병언법’
탐욕스런 기업의 은닉 재산 환수
박근혜 대통령 담화 이후 일명 ‘유병언법’이 제정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19일 “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탐욕적으로 사익을 추구해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해 피해자들을 위한 배상 재원으로 활용토록 하고, 그런 기업은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를 겨냥한 언급이다. 정부는 우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국가가 보상한 뒤 청해진해운 측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새누리당은 정부 차원의 특별법 마련에 앞서 유병언 일가의 이름을 딴 별도의 특별법인 ‘유병언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탐욕스러운 기업과 그 가족, 관련 제3자의 은닉 재산을 빨리 찾는 데 선도적으로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은닉 재산 환수를 위해서는 국세청을 직접 동원하기로 했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의 행태에 제동을 건다는 취지여서 산업안전을 게을리 한 기업에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안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안은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이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기업이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종사자가 숨지거나 다수가 다치는 중대 재해를 일으키는 행위를 기업살인 범죄로 규정해 최고 7년 이상의 징역과 손해액의 3배 이상을 배상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영국이 2007년 제정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과 유사하다. 이 법은 기업이 근로자 또는 공공에 대한 안전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에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망 사고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벌금은 상한선이 없다.
하지만 국회 공청회 절차를 앞두고 있는 기업살인처벌법은 재계와 여당의 반대 기류가 만만찮다. 주영순 새누리당 의원은 “기업살인이라는 법안의 명칭이 자극적이고 기업과 근로자를 선악으로 이분화시킨다는 거부감이 크다”고 말했다. 따라서 논란이 적지 않은 기업살인처벌법보다는 여야 논의를 통해 절충할 수 있는 ‘유병언법’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