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전 대한민국’ 위해 온 국민 역량 결집을
입력 2014-05-20 02:53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면서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다섯 번째 사과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친구나 제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거명하면서는 눈물을 흘렸다. 박 대통령은 동시에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처방전을 내놓았다. 이른바 ‘관피아’ 문제를 비롯해 오랫동안 쌓여온 비정상의 관행들을 정확히 짚었고, 해양경찰의 해체 등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에 필요한 후속대책들은 비교적 강도가 높았다. 이를 위해 정부조직법과 공직자윤리법, 형법 개정안을 빠른 시일 내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무능 부처 손보는 결정 당연하다
우선 박 대통령이 언급한 정부조직 개편 내용이 눈에 띈다. 세월호 사고 초기 구조활동 당시 난맥상을 보인데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도 우왕좌왕해 국민들로부터 ‘저런 해경이 왜 필요할까’라는 질책을 받았던 해경은 조직 자체가 없어지게 됐다. 해양 구조·구난 업무를 등한시한 채 몸집 불리는 데에만 치중해온 해경의 구조적 문제까지 드러나면서 아무 쓸모없는 조직이라고 박 대통령은 판단한 것이다. 해경의 자업자득이다. 해경을 제대로 지휘·감독하지 못한 해양수산부는 해양산업 육성 및 수산업 진흥에, 범정부 차원의 수습 작업에서 제 역할을 못한 안전행정부는 행정자치업무에 각각 전념하는 부처로 조직이 대폭 축소된다. 차제에 무능을 드러낸 부처를 손봐야 국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박 대통령의 결단이 함축돼 있다.
국가안전처의 윤곽도 드러났다. 해경과 해수부, 안행부가 갖고 있던 안전과 관련한 업무는 물론 다른 부처에 분산돼 있는 안전 관련 조직이 이곳으로 통합돼 해상과 육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재난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됐다. 바다에 서서히 빠져가는 세월호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한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첨단 장비와 고도의 기술을 갖춘 특수기동구조대가 국가안전처 산하에 창설된다. 국민들과 전문가들의 제안을 수렴해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마련하는 중대한 과제도 국가안전처에 주어졌다. 2001년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 행정부 내에 가장 규모가 큰 국토안보부가 새로 만들어진 것처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규모와 역할이 방대한 정부조직이 신설되는 셈이다. 세월호 이전과 전혀 다른 국가를 만들려면 새 조직이 필요한 만큼 올바른 방향이라고 하겠다.
官災 유인 근절이 시대적 과제
조직 변경과 함께 관피아 척결을 위한 제도적 방안들도 제시됐다. 안전감독 업무 및 이권이 개입할 소지가 많은 인허가 규제 업무와 직결되는 공직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 공무원을 임명하지 않겠으며,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업무와의 관련성 판단기준도 소속 부서가 아니라 소속기관의 업무로 확대하겠으며, 고위 공무원의 경우 퇴직 이후 10년간 취업기간 및 직급을 공개하는 취업이력공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 등이 골자다. 박 대통령은 또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공직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들의 진입을 용이하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세월호 참사는 관재(官災)’라고 불릴 정도로 관료들의 횡포가 주요 원인이다. 공직자들이 퇴직 후 고액 연봉을 받고 유관 기관이나 기업에 가는 전관예우형 재취업 구조가 재앙을 초래한 근본적 요인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세월호를 막으려면 관료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퇴직 관료의 취업제한 조치는 더 강화돼도 무방할 것이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과 4월 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할 것, 추모비를 건립할 것 등을 제안했다. 필요하다면 특검을 도입해 청해진해운을 비호하는 세력을 규명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대통령 혼자서는 국가개조 어렵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크나큰 회환’이 남는다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명운’을 걸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안전한 대한민국’은 대통령 혼자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관료개혁만 하더라도 역대 정권에서 추진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혁신 바람이 불면 관료들은 납작 엎드린 채 5년 단임 정권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기 일쑤다. 그들 머리에는 ‘정권은 유한하지만 관료는 영원하다’는 인식이 가득하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뜻하지 않은 위기에 처해 관료사회의 도움을 받으려 들면 다시 일어나 사회 전 분야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담화를 통해 국가를 반드시 개조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는 확인됐다. 그 의지가 충분히 실현될 수 있도록 국민들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관료집단의 저항에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도록 응원해줘야 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정략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에 일조해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부정청탁금지법안(일명 김영란법)을 조속히 처리하고 정부조직 개편과 관료사회 정화에 힘을 보태는 게 도리다. 모두가 죄인 아닌가. 대통령과 국민, 정치권이 힘을 합쳐 재난 안전망의 총체적 재정비에 나설 때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전혀 다른 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