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5월 25일엔 해운대로 가자
입력 2014-05-20 03:26
“거룩한 금식을 선포하고, 성회를 열어라. 장로들과 유다 땅에 사는 모든 백성을 불러 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모으고, 주님께 부르짖어라.” 요엘서 1장 1절의 말이다. 2장 15절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너희는 시온에서 뿔나팔을 불어라. 거룩한 금식을 선포하고, 성회를 열어라.”
성경에 많이 나오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나팔’이다. 나팔이란 단어가 들어간 구절이 119개 정도 나온다. 요엘서 외에도 몇 개 살펴보자.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이사야 58장1절)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이사야 58장1절)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고린도전서 14장8절)
지금은 나팔을 불어야 할 때다. 누가 나팔을 부는가. 성경을 보면 제사장과 선지자가 나팔을 불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나오듯, 천사들이 나팔을 불었다. 나팔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도구. 임박한 재난이나 전쟁을 알리며 대비하게도 한다. 구약시대에 누군가가 나팔을 불면, 그 나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금식하고 마음을 찢으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나팔소리에 “예스(Yes)”라고 응답할 때에 새로운 역사가 일어났다.
때를 분별해야 한다. 지금은 어떤 때인가. 지금은 나팔을 불 때, 그 나팔 소리에 모두가 응답해야 할 때다. 거룩한 성회를 소집해야 할 때다. 나팔을 불어야 할 때 나팔을 부는 자가 없고, 정작 나팔 소리가 날 때 그 소리에 응답하는 자가 없을 때의 결과는 멸망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누군가가 나팔을 불고, 그 나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모여 마음을 찢으며 기도할 때에 놀라운 반전의 역사가 일어났다.
지금 한국 땅에 나팔 소리가 들린다. 거룩한 성회를 소집하는 나팔이 울려 퍼지고 있다. 5월 25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선 ‘525 회개의날’이란 이름으로 수 십만 명이 모여 부르짖으며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이보다 더 중요한 시기가 없다고 할 때에 열리는 뜻있는 모임이다. 집회를 계획한 목회자들은 처음엔 타이태닉호 같이 침몰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부둥켜안고 기도하기로 했었다. 그러다 집회 준비 과정에서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국가적 재난으로 전 국민이 슬퍼하는 시간에 집회가 열리게 된 뜻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이 집회가 교회를 뛰어넘어 한국 땅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깃든 거룩한 성회임을 자각했다. 이날이 ‘회개의 날’이 될 것을 선포했다.
교회사적으로 역사를 바꾼 기도들이 적지 않다. 이번 해운대 집회에서 진정한 회개를 기초로 한국의 운명을 바꾸는 기도가 울려 퍼지기를 소망한다. 나팔을 부는 자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시대적·신적 사명을 자각해야 한다. 더 힘껏 불어야 한다.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집회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도록 생명을 거는 심정으로 마지막 준비를 해야 한다.
부산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이 나팔 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이제 거룩한 성회가 소집됐다. 5월 25일에는 해운대로 가자. 비록 가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함께 기도드리자. 한국의 운명을, 이 땅의 역사를 바꾸는 기도를.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