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용백] 十族을 멸하는 자세로

입력 2014-05-20 02:50 수정 2014-05-20 09:22

세월호가 일깨운 안전 중요성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진도 팽목항의 모든 빛과 소리를 삼키 듯 깊게 드리워진 비통함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생각할수록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에 대한 죄스러움,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인한 자괴감이 마음을 짓누른다.

이번 참사로 3면이 바다인 나라의 기관들과 기업들, 국민들은 고작 해안가 물놀이 수준의 해난 대처 능력밖에 없음이 확인됐다. 세월호 선박직 승무원들과 청해진해운, 해양경찰 등은 고귀한 304명을 산 채로 수장(水葬)시키는 무도(無道)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 이면에는 한국선급, 해운조합, ‘관(官)피아’, 종교단체, 비리 묵인 업체들이 칡덩굴처럼 얽혀 있었다.

이제 정부와 민간이 그동안 소홀했던 안전부문에 써야 할 돈은 천문학적이다. 하지만 성과가 좀체 드러나지 않아 과시적 부문에 대한 돈 집행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의지적으로 나설 경우 거의 ‘세월호 정부’로 임기가 끝날 가능성이 크다. 부담이 커지면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실천하는 게 자칫 ‘하세월(何歲月)’이 될 수도 있다.

청와대가 공직사회의 그릇된 관행과 기강을 바로잡겠다고 적개심을 드러냈지만 미덥지 않다. 군인, 군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선출직 공무원을 제외해도 공무원 수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99만8940명이다. 이들을 개조하려면 꾸준한 모니터링과 관리가 필요한데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공무원 100만명의 반발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반성도 개선 노력도 없는 국민들의 방관적인 자세다.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은 물론 재계 총수에서부터 말단 사원까지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 한다. 적어도 생명 안전을 확보하는 데서 비리를 없애 안전을 지키는 기본 원칙들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이 원칙들이 사회 전반의 원칙들을 강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반성했다면 지금 실천해야

과거 동양의 전제군주들은 국가적 중대범죄자의 경우 극형으로 삼족(三族)을 멸했다. 부계(父系) 친족과 모계(母系)·처계(妻系) 친족을 포괄한 연좌제였다. 세분하면 구족(九族)이 된다. 중국 명(明) 황제는 친구까지 포함시켜 십족(十族)을 멸하기도 했다.

명 성조 주체(1360∼1424)는 충신 방효유(方孝孺, 1357∼1402)의 십족을 주살했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의 아들 연왕(燕王) 주체는 반란을 일으켜 조카의 황위(皇位)를 찬탈한 뒤 방효유를 중용하려고 했다. 충효 규범을 중요시했던 방효유는 주체의 회유를 헌신짝만도 못하게 여겼다. 결국 방효유는 처형당했고 피바람이 일었다. 제자와 친구들까지도 희생을 피할 수 없었다. 방효유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847명이나 됐다고 중국 역사서들은 기록하고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친구까지 용서치 않은 건 추구하는 가치, 동정이나 동조를 통해 마음을 달리 먹을 가능성까지도 철저하게 도려내겠다는 의지였다.

박근혜정부는 마치 십족을 처결하는 엄정함으로 무장해야 한다. 잘못된 관행과 부패를 혁파하고, 안전의 기본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중대 범죄자들은 퇴로를 차단해 ‘살아도 죽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는 사회적 규범과 인식을 확립시키는 게 시급하다. 낱낱이 따져서 확실히 개선하고, 이를 통합해 다시 효율성을 점검하고, 끝없는 시뮬레이션과 반복훈련을 생명처럼 여겨야 한다. 온 국민이 진정으로 반성했음을 확인하는 일들을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용백 편집국 사회센터장 ybkim@kmib.co.kr